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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서 윤석열까지···반복되는 보수정당의 ‘탄핵 악몽’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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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적 공백으로 국정농단…탄핵 이후 가치 재구성 실패로 또다시 위기

법치·자유주의 결여와 정치체계 사유화 등 겹쳐 보수당 구조적 문제 심화

김기현, 추경호, 나경원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3월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각하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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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헌법개판소’라는 말이 들리는데 국민 여러분이 일어나셔야 한다.”(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입법부, 사법부, 군대, 경찰에 똬리 틀고 있는 지렁이들을 찾아낸 것이다. 이런 지렁이 기생 세력을 깨부숴야 한다.”(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우리 모두 단결된 힘으로 악의 창살에 갇혀 있는 윤 대통령을 구출하자.”(윤상현 국민의힘 의원)

헌법기관을 모욕하는 발언, 폭력적 선동, 극단적 정치 수사. 이러한 메시지가 전광훈 목사나 원외 극우정당이 아닌 원내 108석을 가진 집권당의 중진 의원들 입에서 나오고 있다. 제도 정치의 중심에 있는 정당이 극단주의적 수사에 매몰되는 것은 단순한 정치 공세 수준을 넘어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를 위협하는 현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국정농단 사태로 탄핵당한 지 8년 만에 윤석열 대통령 역시 비상계엄 선포로 탄핵 위기에 직면했다. 한 정당 출신 대통령이 연이어 탄핵 위기를 겪는 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전례 없는 일이다. 보수정당이 반복적으로 탄핵 위기를 맞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이며, 이러한 위기 속에서 오히려 극우적 성향이 더 짙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념적 공백, 가치 기반의 부재

전문가들은 보수정당의 반복되는 탄핵 위기와 극우화가 근본적으로 ‘이념적 공백’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정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정책적 방향성을 상실한 채 권력자와의 관계나 정파적 이해만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정치학자는 “국민의힘이 보수에서 극우로 변질했다는 진단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때부터 이들에게는 대통령과의 친소관계만 중요했지 정책적 지향성과 이념적 정체성은 전무했다. 국정농단은 이러한 이념적 공백의 필연적 결과였다”며 “그러나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가치 재구성에 실패했기 때문에 또 한 번의 탄핵 위기를 맞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수’라는 지켜야 할 이념적 정체성이 없기에 언제든 극우라는 급류에 휩쓸릴 수 있었다고도 했다.

보수정당의 ‘이념적 공백’은 여러 연구에서도 지적됐다. 채장수 경북대 교수는 논문 ‘한국 보수진영의 위기와 보수주의의 특성’(2018)에서 한국 보수주의가 “외적인 영향력에 비해 내적인 정당화 수준이 상당히 낮다”고 진단했다. 다수 연구 또한 한국의 보수정당이 반공주의나 색깔론 등 부정적인 전략을 동원해 정치적 정당성을 유지해왔다고 지적한다. 즉 이념이나 가치 체계를 정립하기보다는 ‘적과 동지’를 가르는 프레임에 치중해왔다는 분석이다. 채 교수는 보수정치가 내적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강력한 보수성 덕분에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해왔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보수주의가 진정한 이념적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였다는 해석도 덧붙였다.

그러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이 같은 통과의례를 통해 이념적 성숙을 이루기보다는 익숙한 ‘색깔론’ 정치로 퇴행했다. 자유한국당은 2017년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에 승복하는 듯했지만, 이후 ‘찬탄핵’과 ‘반탄핵’ 대립 구도를 형성하며 극단적 태극기 집회 세력과 연대했다. 또 탄핵을 지지한 세력을 ‘배신자’로 몰아 정치적 입지를 축소시키면서 정당 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목소리의 입지를 축소시켰다.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당내 기득권 세력이 ‘배신자 프레임’을 철저히 이용해 합리적인 목소리를 억눌렀다”며 “특히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박근혜 수호’를 외치는 강경 지지층에만 기대면서 당내 다른 의견이 설 자리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이념적 성찰 대신 극단적으로 치달은 이분법적 대립 구도는 또 한 번의 탄핵 위기를 맞닥뜨리게 했다.

■공천, ‘사적 운명공동체’로 전락한 정당

점점 강화되는 소수 권력자 중심의 공천도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공천권이 소수 권력자에게 집중되는 중앙집권적 구조가 심화하면서 정당 조직의 자율성이 약화됐고, 이는 반복되는 탄핵 위기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22대 총선에서 ‘친윤’ 성향 인사들이 대거 공천되고, 지도부마저 대통령 최측근으로 채워지면서 국민의힘 정당 조직의 자율성은 극도로 취약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조치를 독단적으로 강행했을 때조차 국민의힘은 사전 보고나 논의는커녕 그저 후속 처리에 동원됐을 뿐이다. 이에 대해 장성철 소장은 “일방적 명령과 복종의 관계다. 당을 정치적 동반자가 아니라 손안의 공깃돌처럼 대하는 대통령의 태도가 그대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윤왕희 성균관대 미래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논문 ‘포퓰리스트 정당으로서 거대 양당의 공천’에서 22대 총선 공천을 분석하며, 시간이 갈수록 정당 공천이 특정 소수 권력자에게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수정당이 반복적으로 위기에 처하는 원인 중 하나로 이러한 공천 구조를 꼽으며, 그 극단적 사례로 드러난 것이 ‘명태균 리스트’라고 전했다.

최고권력자가 좌우하는 공천은 과연 보수정당이 ‘국민적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의석수 108석, 전체 의회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 정당은 국민 전체의 스펙트럼을 반영하기보다 최고 권력과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집단으로 축소돼버렸다. 윤 연구원은 “소수 권력자에게 선택받은 사람들이기에 자신을 공천한 권력자가 한쪽으로 확 치우치면 정당 자체가 그쪽으로 가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국민의힘은 정당이라는 외피를 쓰고 사실상 특수 이해관계인이 뭉쳐 있는 하나의 사적 운명공동체로 전락했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극우 집회에 참여하는 현상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다선 의원이라면 의정활동과 정당 활동을 통해 독자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구축해야 하는데 지금은 최고 권력자에 종속된 형태”라며 “잇따른 탄핵 위기와 극우화는 20년 이상 진행된 정당 공천제도 변화의 경로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된 결과”라고 말했다.

■자유주의와 법치주의의 부재

보수정당이 반복적으로 탄핵 위기에 직면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정당 내에서 자유주의와 법치주의가 결여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권혁용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는 “박근혜·윤석열 대통령과 한국 보수정당 세력은 자유주의와 법치주의의 개념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박근혜 국정농단도,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도 모두 헌법과 법률에 의거하지 않은 자의적 권력행사였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보수정당이 자유주의와 법치주의를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오랜 기간 누려온 권력과 기득권을 법적 통제 아래 놓는 데 대한 거부감이 내면화된 결과일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이는 보수정당 내부를 넘어 보수 정치권 전반에 만연해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27일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임명을 미루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음에도 최 권한대행은 여전히 임명을 미루고 있다. 정치적 계산이 헌법을 압도하면서 법치주의라는 근본적 가치가 무너지는 상황이다.

보수정당 대통령의 연이은 탄핵 위기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이념적 공백, 법치주의·자유주의의 결여, 지도자 중심의 사유화된 정치체계 등이 서로 연결되며 보수정당의 구조적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장성철 소장은 “비극이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다. 박근혜 탄핵 이후 당내에서는 ‘찬탄이냐 반탄이냐’를 놓고 끝없이 갈등했다. 이번 탄핵심판 이후에도 같은 갈등으로 극도의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정당을 과연 국민이 지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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