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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토)

쌍용차 해고자 죽음의 행렬…연대의 ‘노란봉투’가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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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해고자들 잇단 자살·돌연사
22번째 죽음 뒤 시민사회 대응 나서
공지영 책 쓰고, 뮤지션 문화공연도

쌍용차 노조에 파업 손배 47억 판결
‘4만7천원씩 10만명 모으자’ 손편지
이효리부터 시민들까지 14억원 기부

천문학적 파업배상 막을 ‘노란봉투법’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입법 지지부진
윤석열 정부, 2차례나 거부권 행사해



쌍용차 희망지킴이가 2013년 6월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해고노동자들이 2만개 부품을 모아 자동차를 만드는 ‘H-20000’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공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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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용산의 불타는 망루, 그리고 쌍용자동차(이하 쌍용차) 노동자들이 농성하던 공장 건물 옥상에서 쫓기는 노동자를 경찰이 폭행하는 장면은 선명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내가 ‘용산철거민살인진압범국민대책위원회’ 일로 수배 중이던 2009년 8월에 쌍용차 파업은 끝났고, 노동자 2500명이 쫓겨났다. 쌍용차 해고자들과 그 가족들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거나 심근경색증 등으로 사망했다. 열일곱명이 죽었을 때 심리상담하던 정혜신 박사의 제안으로 심리치유공간 ‘와락’이 만들어졌다. 그러고도 사람들이 계속 죽었다.







쌍용차 해고자 지원 ‘희망지킴이’





2012년 3월30일, 해고노동자 이○○이 자신이 살던 김포의 임대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스물두번째 사망자였다. 줄줄이 이어지는 죽음 앞에서 뭐라도 해야 했다. 주로 용산 대책위를 함께 했던 송경동 시인, 문화연대의 신유아, 민주노총의 박병우 등과 의논해서 ‘함께 살자! 희망지킴이’(희망지킴이)를 만들었다. 우리는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당신들이 잘못해서 해고된 게 아니다’라고 말할 사람 100명을 모으자고 생각했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모아나갔다.



먼저 소설가 공지영에게 쌍용차 해고자 문제를 책으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해고와 그 후 과정을 생생하게 책으로 썼다. ‘의자놀이’란 이 책은 그가 쓴 첫번째 르포르타주였다. 그는 인세를 기탁했고, 출판사도 수익금을 사업에 쓰라고 내놨다. 거기에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후원을 했다. 시민들도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보내주었다.



쌍용차 노조에서는 스물두번째 죽음 이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천막 하나 치는 데 한달 보름 동안 싸워야 했다. 대한문 앞에서 문화공연을 했다. 전인권, 허클베리핀, 브로콜리너마저 등 뮤지션들, 영화감독 변영주 같은 문화예술인들이 적극 참여해서 대한문 앞에서 몇차례 콘서트도 열었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힘이 더 커져 갔다. 그런 힘이 ‘함께 살자! 농성촌’까지 이어졌다.



2013년은 박근혜 정권이 탄생했으니 더욱 상황이 어려워졌다. 3월3일 새벽에는 대한문 농성촌에 불이 났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천막 안에 있던 방송장비며 여러 집회 도구들이 불탔다. 화재 사건을 계기로 서울 중구청은 농성장에 철거 압박을 더해 갔다.



희망지킴이는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시민들이 관심을 갖도록 할 이벤트가 필요했다. 자동차를 만들다가 쫓겨난 노동자들이 가장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게 자동차 만드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 ‘H-20000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자동차는 대략 2만개 부품으로 만들어진다는 데 착안했다. 이런 계획을 발표하니 7천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궁리 끝에 쌍용차에서 생산한 코란도 중고차를 하나 매입했다. 자동차공업사를 빌려서 1박2일 동안 차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영상에 담았다. 그 차에 이윤엽 화가가 유화로 그림을 그렸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자동차가 탄생했다. 2013년 6월7일 서울광장에서 모터쇼를 개최했다. 화려한 그림이 입혀진 자동차 앞에서 포즈를 잡고 쌍용차 해고자들과 시민들이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 그 차는 노래패 ‘꽃다지’에 돌아갔다.



이런 즐거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쌍용차지부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은 2012년 11월20일부터 2013년 5월9일까지 171일 동안 쌍용차 공장 앞에 있는 15만㎸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탑에 올라가 농성을 했다. ‘H-20000 프로젝트’가 끝나자 중구청은 본격적으로 대한문 앞 천막 철거를 압박해왔다. 갑작스럽게 대한문 앞에 화단이 생기고, 남대문서 최성영 경비과장은 악착스럽게 농성자들을 몰아내려 했다. 걸핏하면 연행자가 생겼다. 급기야 김정우 쌍용차지부장은 농성 천막 철거를 막다가 감옥에 갔다. 결국 그해 11월 대한문 앞 농성을 풀고, 평택으로 내려갔다.







47억 손배소송과 노란봉투





2013년 12월, 쌍용차 회사와 경찰이 노조 등에 청구한 손해배상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다. 47억원 배상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을 주목해 본 사람이 있었다. 아이 둘의 엄마였고, 배 안에 셋째를 임신 중이던 배춘환은 아이 학원비를 내려고 했던 돈 4만7천원을 편지와 함께 주간지 ‘시사인’에 보냈다.



“해고 노동자에게 47억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이 나라에서 셋째를 낳을 생각을 하니 갑갑해서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입니다. 47억원…. 뭐 듣도 보도 못한 돈이라 여러번 계산기를 두들겨봤더니 4만7천원씩 10만명이면 되더라고요.”



시사인과 아름다운재단이 ‘노란봉투 캠페인’을 벌였다. 캠페인에는 가수 이효리를 비롯해 유명인들과 정치인들도 대거 참여했다. ‘4만7천원’이 든 봉투가 답지했다. 어느새 14억7천만원이라는 성금이 쌓였다. 이 과정에서 2014년 2월26일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손배 가압류 문제를 풀기 위한 노동사회단체 ‘손잡고’(손배 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도 출범했다. 손잡고는 이 기금으로 쌍용차만이 아니라 전국의 해고자를 포함해 손배 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에게 긴급 생활비를 지원했고, ‘노란봉투법’ 입법 발의도 하고, 손배 가압류 문제를 이슈화하기 위한 ‘노란봉투법 모의법정 경연대회’도 열었다. 나도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그러다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를 맞았다. 세월호 이후에는 손잡고 관련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세월호 참사 추모 집회 주도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2015년 11월에 보석으로 나와서 손잡고에서 활동가가 해고된 일을 알게 되었다. 민주노총 박병우의 소개로 만났던 손잡고 활동가 윤지선은 두시간 동안 울면서 해고 과정을 설명했다. 다행히 현장 노동자들의 항의로 다시 복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손잡고 조직의 재건에 나섰다. 노란봉투 캠페인의 첫 기부자였던 배춘환이 대표를 맡고, 나는 운영위원회에 결합하기로 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2016년 4월 손잡고 조직을 재건했다. 이후 진상조사단을 만들어서 윤지선 활동가 부당해고 사건을 밝히기 위한 일에 착수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관련자들을 인터뷰했다. 한편으로는 중재자를 세워서 문제를 야기한 한○○ 교수와 협상에도 나섰다. 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해 8월, 진상조사단은 보고서를 만들어서 인권·사회단체들에 배포했다. 한 교수는 이 보고서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진상조사단 활동을 했던 나와 박병우, 윤지영 변호사를 고소했다. 하지만 한 교수가 완패했다.





연극 ‘노란봉투’에서 극중 인물 병로와 강호는 최후의 투쟁 방법으로 전광판 위에 오르는 ‘고공농성’을 택한다. 사진은 첫 공연이던 2014년 11월25일 저녁 서울 종로구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찍은 장면이다. 손잡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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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가로막은 거부권





그러던 중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손배 가압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기대가 컸지만, 쌍용차 문제에 대한 국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경찰이 소를 취하하면 배임이 된다는 논리로 문제 해결을 회피했다. 결국 2018년 7월 경찰청 인권침해진상조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서 당시 경찰청장이 용산 참사 등과 함께 사과한 게 전부였다.



손잡고는 10년 넘게 쌍용차, 유성기업, 상신브레이크, 스타케미칼, 케이시(KEC), 철도공사, 문화방송(MBC), 현대제철, 동양시멘트, 아사히글라스 등 손배 가압류를 당한 노동조합과 연대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10년 넘는 기간의 연대활동 덕분에 현장 노동자들에게 손잡고는 크나큰 신뢰를 얻고 있다. 많은 일을 했지만, 가장 큰 일은 ‘노란봉투법 모의법정 경연대회’를 매년 연 일과 손배 가압류 소송기록 ‘아카이브 33.3’을 구축한 것, 그리고 ‘노란봉투’ ‘C가 왔다’와 같은 연극 공연을 올렸고, 2023년에는 노동 퀴즈쇼를 개최한 것 등이 특별하게 기억이 남는다.



2023년 1월19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퀴즈쇼 노란봉투를 열어라!’ 제작발표회 모습. 손잡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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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거제도의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이후 노란봉투법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로부터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를 만들어 참여하고 있다.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은 두차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모두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 3월6일, 다시 법안 발의를 했다. 손잡고는 현재 2022년 화재 뒤에 폐업한 일본 니토덴코를 상대로 고용승계 투쟁 중인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15년째 소송 중인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옛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에게 부과된 손배 가압류 문제를 풀기 위해 연대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지금 손잡고의 상임대표를 맡아서 활동 중이다.







박래군 | 36년째 인권운동가로 살고 있다. 유가협,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재단 사람을 거쳐서 현재는 4·16재단 운영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 ‘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공저서 ‘이따위 불평등’ ‘새로고침’ ‘살아남은 아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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