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31 (월)

“10년뒤 대출기업 구성 어떨지 ‘미래’ 봐야…그게 진짜 은행 실력” [헤경이 만난 사람-윤종원 전 IBK기업은행장]

0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자본시장 억제 규제 해소해야

은행 자금중개 방식 다변화 필요

투융자 복합 등 다양한 지원 중요

‘보이지 않는 은행’으로 변모해야

윤종원 전 IBK기업은행장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금융연구원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 전 행장은 자본시장 활성화를 통해 은행과 비은행 부문을 균형적으로 발전시켜 금융시장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세준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IMF(국제통화기금)에서 우리나라 은행의 발전 수준을 평가했는데, 세계 6위였습니다. 금융 시장의 깊이나 전문성 측면에서는 우리 은행들이 전 세계적으로 우수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국제 경쟁력 측면이나 금융의 혁신성, 그리고 정직성 등 부분에서는 부족한 게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윤종원 전 IBK기업은행 행장(현 한국금융연구원 비상임연구위원)은 21일 오후 명동 은행회관에서 진행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한국 금융산업의 현주소에 대해 진단하며 이같이 말했다.

윤 전 행장은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IMF 상임이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대사를 거쳐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하는 등 국내외 요직을 두루 거친 국내 대표 ‘경제통’이다. 지난 2020년부터 3년간은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의 수장으로서 중소 금융의 혁신을 이끌어왔다.

최근 그는 지금까지의 경험과 금융에 대한 철학을 담은 경제서적 ‘대한민국 금융의 길을 묻다’를 집필했다. ‘거시 경제통’이라는 별칭답게 윤 전 행장은 대한민국 금융이 현재 처한 상황과 금융의 미래를 위한 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경제 문제 해결 위한 사회적 합의 더 중요…민간신용 과도 증가 경계”

작년 말부터 한국 경제는 ‘시계 제로’ 상황에 맞닥뜨려 왔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정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며 글로벌 경제가 출렁이고 있다. 다만 윤 전 행장은 지금의 상황이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우리가 겪는 상황의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 사회적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과거 위기 때는 ‘이렇게 문제를 풀자’고 하면 같이 힘을 모아서 함께 움직였는데 지금은 어디로 갈지에 대한 방향성도 못 잡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지금은 문제가 어렵다기보다는 문제를 푸는 능력 자체에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회 전체의 의지나 합의만 있으면 얼마든지 문제를 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전 행장은 현재 한국의 금융 시장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최근 사회적 이슈인 가계부채 증가세에 대해서는 “가계부채뿐만 아니라 기업 부채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라며 “민간신용 수준이 GDP(국내총생산)의 200%를 넘었고,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부동산과 연계돼 있어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소지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GDP 대비 가계부채 수준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거시건전성 규제를 통해 총량을 안정시켜야 한다”며 “기업 대출도 한계기업 구조조정, 직접금융 확대 등을 통해 부채의 과도한 증가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전 행장은 특히 국내 금융시장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본시장을 보다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금융산업에서 은행과 비은행 부문이 균형적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은행을 통한 자금조달 비중이 매우 높다. 경제 발전 초기 단계에는 민간신용(은행 대출)이 늘면 경제성장이 촉진되는데 이게 GDP 대비 150% 정도 되면 정점을 지나 성장 촉진효과가 약화된다”며 “이에 비해 GDP 대비 주식 시가총액 등 주식시장의 심화는 경제 성장을 계속 촉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에는 다양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은행은 은행대로 자본시장은 자본시장대로 잘할 수 있는 부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자본시장의 발전을 막고 있는 규제를 찾아서 없앨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 전 행장은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사례로 증자를 언급했다. 그는 “기업부채를 늘리는 것보다 자본시장을 키우는 것이 훨씬 혁신 친화적이지만 현행 제도에서 기업이 증자를 하는 것보다는 차입을 해서 자금을 융통하는 것이 유리한 상황”이라며 “기업 입장에서 증자는 차입과 달리 비용 처리가 안 되는 데다 기업가치가 저평가돼 있어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소유권 희석 문제에 더해 비용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증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저평가된 국내 주식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전 행장은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제가격에 조달할 수 있게 해 증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기업가치가 제대로 평가받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최근 밸류업도 그런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은행, 대출 위주 전략 벗어나야…비금융·투융자 등 지원방식 다양화”

은행권의 구태의연한 모습에 대한 우려도 이어갔다. 특히 “대출은 기업의 사업 성공에 따른 혜택을 공유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사업이 아무리 유망하더라도 위험하면 대출에 소극적”이라며 성장 지속을 위해서는 과감한 혁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지금 어떤 기업에 대출을 하고 있느냐보다는 10년이나 20년 뒤에 대출 기업의 구성이 어떨지가 은행의 경쟁력인데, 지금 은행의 대출 포트폴리오는 과거지향적”이라며 “최소한 현재나 미래 중심적으로 (포트폴리오를) 바꿔야 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대출 위주의 자금 중개 방식을 보다 다양화하고, 비금융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윤 전 행장은 강조했다. 그는 “예금을 받아 대출해주는 전통적인 자금 중개가 은행의 기본 역할이지만 투자나 투융자 복합 지원 등 지원 방식을 다양화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타트업과 유망 중소기업의 금융 수요를 외면할 경우 은행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고 국가경제의 미래에도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비금융 지원과 관련해서는 “빅테크가 금융권에 들어와 방대한 플랫폼 경쟁력을 바탕으로 고객 접점을 확보하고 있다”며 “은행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고객 접점을 확대하는 동시에 빅테크에는 없는 차별적인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객과의 장기적인 관계를 토대로 차별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측면에서는 전통 금융회사가 우월하다”며 “기업은행장 시절 도입한 ‘금융주치의 제도’와 같이 정보 비대칭을 없애고 비금융 서비스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그렇게 기업이 튼튼해지면 은행도 튼튼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 나아가 은행 스스로도 ‘보이지 않는 은행(invisible banking)’으로 변모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 신기술의 영향은 파괴적이며 금융업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불가피하다”며 “웹 3.0을 토대로 한 금융의 탈중앙화, 개인화는 금융 상품과 서비스, 업무 방식과 이용 행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더해 윤 전 행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금융사들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나 주가순이익비율(PER)을 통해 볼 때 국내 기업의 가치에 대한 해외의 평가는 매우 박하다”고 지적했다. 윤 전 행장은 그 원인으로 기업이 가치를 창출하고 배분하는 과정의 불투명성, 주주 이익에 친화적이지 않은 배당구조 등을 꼬집었다.

같은 맥락에서 은행권의 내부통제에 대한 중요성도 힘주어 말했다. 윤 전 행장은 “단순한 직원 일탈 문제로 치부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부가 금융회사 책무 구조도 제도를 도입하고 금융회사도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있으니 점차 나아질 것”이라면서도 “금융사고 ‘제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조직문화, 관행과 인식을 쇄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꼴이 돼선 안 된다”며 “내부 통제 제도나 직원들의 의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기 지원제도 합리화 필요…유망 스타트업 지원 늘려야”

3년간 기업은행장으로 재직하면서 직접 경험한 중소 금융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그는 “중소기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에 그렇겠지만 중소기업 지원제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많고 복잡한 것이 현실이다. 이를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며 “한계기업을 포함한 전반적인 시혜적 지원을 줄이고 성장가능성이 높고 유망한 스타트업 등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 금융의 경우 정보의 비대칭 등 시장실패가 나타나기 쉬운 영역이므로 정보 공유를 확대하는 한편 모험자본 생태계를 활성화해 기업의 혁신활동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 전 행장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자금이 흘러 들어갈 수 있는 채널이 있어야 하는데 초기 단계에서는 민간 시장의 참여가 희박하다”며 “행장 시절 벤처 대출제도를 도입하고 벤처 자회사를 만들었던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융자만 하면 기업이 성공했을 때 은행이 혜택을 못 보는데 투자를 같이하면 성공 경우 혜택을 같이 누린다”며 “은행에 있을 때 투융자 복합 방식의 지원을 늘렸다. 금융 수요가 달라지면 은행도 거기에 맞춰서 변화해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벼리·정태일 기자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헤럴드경제 주요 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