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서울 곳곳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왼쪽은 서울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이 연 15차 범시민 대행진, 오른쪽은 서울 세종대로에서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가 연 광화문 국민대회.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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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지난 2월 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당은 중도 보수 정당”이라고 말한 뉴스를 보며 미국 민주당도 보수 정당이 아닐까 생각했다. 생각은 꼬리를 물어 과연 2025년 현재 한국과 미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의 정치적 현실을 설명할 용어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로까지 이어졌다.
문제를 이해하려면 정치 용어의 역사를 먼저 살필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중반부터 ‘리버럴’과 ‘보수’라는 용어를 자주 썼다. 리버럴은 서민 중심 정부 정책을 통해 민생과 민권을 지향했고 보수는 정책이 사회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꺼리고 전통의 가치를 강조했다. 즉, 리버럴은 정부, 특히 연방정부의 정책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고 보수는 작은 정부, 시장의 원리와 전통을 지키려고 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리버럴 대신 진보라는 말의 사용 빈도가 급격히 늘었다. 1930년대부터 약 50년 동안 힘을 얻어 미국 주류였던 리버럴은 1980년 보수 정치의 대표적 인물 로널드 레이건의 압승으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1992년 당선한 빌 클린턴은 민주당이었지만, 그는 리버럴과 거리를 두면서 두번의 승리를 거뒀다.
2008년 세계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변화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리버럴 중에서도 더 큰 변화를 요구하는 세력들은 진보로 자칭했다. 리버럴은 ‘올드’한 느낌이었다. 신선한 이미지의 진보가 점점 더 세를 넓혔다.
2016년 대선은 큰 변화를 보여줬다. 민주당 경선에서 진보를 자칭한 버니 샌더스 후보는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정체성이 애매모호한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후보가 되었다. 공화당은 보수를 자칭하지 않으면서, 옛날로 돌아가자는 반동적 정치 지향주의자 도널드 트럼프가 후보가 되었다. 그렇게 치른 본선은 리버럴, 진보, 보수 등을 분명하게 표방하는 후보가 없는 선거였다. 2020년과 2024년 선거도 비슷해 보였다.
2024년 대선은 새로운 구도가 등장했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부활을 막기 위해 변화를 꺼리고 체제 유지를 지향하는 세력으로 변했고 트럼프는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반혁명에 가까운 반동적 정치를 강조했다. 결국, 2025년 현재 민주당은 진보를 외면하는 체제 수호 세력이고 공화당은 보수를 외면하는 반동적 세력이다. 이렇게 보면 미국 민주당은 20세기형 보수와는 다르지만, 보수 정당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한국 정치사와 정당의 역사는 미국과 많이 다르지만, 상황만 보자면 비슷한 점이 많다. 민주당은 독재 시대 야당과 민주화 운동에, 국민의힘은 독재 시대 여당과 독재 협력 세력에 각각 뿌리를 둔다. 민주화 이후 민주당은 20세기 중반 미국 민주당처럼 서민 중심 민생과 민주주의 지향 정당이 되었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은 미국 공화당처럼 시장 원리와 전통 존중 정당이 되었다. 이후 민주당은 외연을 넓히기 위해 점차 보수 쪽 가치에도 관심을 가졌고, 국민의힘은 전통적 보수에서 벗어나 극우에 가까운 반동적 정치를 지향한다.
2020년대 한국과 미국 정치 변화의 원인은 윤석열과 트럼프라는, 민주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반동적 정치가의 등장이다. 그들의 위협 앞에 진보를 표방하던 세력들은 헌법과 체제 수호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 눈에는 기존 질서를 수호하는 쪽보다 반동적 정치가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렇다 보니 민주당은 보수 정당이 아니라고 할 수 없게 되었고, 진정한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은 민주당을 비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많은 나라의 현실이다.
그렇지만 민주 선진국에서 정치의 사회적 역할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라는 용어 역시 여전히 살아 있다. 사회 기본 질서를 지켜야 할 때 보수라는 용어를 택할지라도, 사회 변화에 따른 진정한 개혁이 필요할 때 시민들은 진보를 택한다. 그때가 되면 진정한 의미의 진보를 선택하는 시민들 요구에 맞춰 정당은 표방하는 용어를 내세울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정치적 안정을 기대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지금이야말로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를 시민들이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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