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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의 사談진談/최혁중]트럼프의 ‘이미지 정치’는 오벌 오피스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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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1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서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그의 아들 ‘X(본명 X Æ A-Xii·엑스 애시 에이트웰브·오른쪽에서 세 번째)’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집무실에서 사진기자들은 트럼프를 바로 앞에서 로앵글로 촬영할 수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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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최혁중 사진부 차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한국 신문 1면에 사진이 많이 게재된 외국인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관세 전쟁’ 등 뉴스의 중심에 있으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트럼프의 사진에는 그 자체의 특별함이 있다. 음악이 흐르면 춤을 추고 기분이 좋으면 호탕하게 웃는다. 기분이 나쁘면 눈을 치켜뜨며 표정이 달라지고 손짓을 하며 소리도 지른다. 시쳇말로 ‘찍으면 다 그림이 되는’ 이런 직관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은 사진기자에게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피사체’다.

좋은 사진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트럼프의 ‘포토제닉’한 개인기와 더불어 미국의 개방적 취재 환경은 신문에 게재되기 좋은 사진의 조건을 만들어주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가 대표적인데 약 75.4㎡(약 23평) 규모의 이 작은 공간에서 출입을 허가받은 사진기자들은 대통령을 바로 코앞에서 찍는다. 망원렌즈도 필요 없으며 100mm 이하의 ‘작은 렌즈’로 모두 커버된다. 가까이 있는 대통령을 바로 아래에서 올려 찍는 로앵글(low-angle)은 더 크고 강력하게 보이는 효과가 있어 자신감에 찬 권위 있는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이곳에서 사진기자들은 대통령의 집무 책상인 ‘결단의 책상’에서 상호 관세 등 수십 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트럼프의 모습과 이 책상에 일론 머스크의 아들이 코딱지를 묻히는 장면을 찍었다. 책상의 반대편 소파에서 있었던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정상회담에선 트럼프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말싸움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어쩌면 트럼프는 이 작은 공간을 자신의 ‘쇼룸’으로 만들어 세계를 향해 매일매일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미국 연방의회의 취재 환경도 우리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4일 열린 상하원 합동의회의 트럼프 연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연단 바로 앞 의원들의 좌석 사이에서도 사진기자의 취재가 허용됐다. 이 구역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연설하는 트럼프를 의원들의 눈높이에서 찍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바로 이런 취재의 허용으로 트럼프에게 지팡이를 들고 항의하는 앨 그린 민주당 하원의원의 모습이 한 프레임에 담겼다. ‘로봇 카메라’의 모습도 보였다. 트럼프 뒤쪽에 앉아 있는 J D 밴스 부통령의 머리 위쪽 벽면에 부착된 이 카메라는 트럼프의 뒷모습과 그 앞에서 박수 치는 공화당 의원들과 연설 도중에 빠져나가는 민주당 의원들의 모습을 한 프레임으로 담아내는 역할을 했다. 경호상 연설하는 대통령의 뒷모습을 사진기자는 찍을 수 없는데 이를 로봇 카메라가 대신한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 정치 현장은 미국과 비교하면 폐쇄적인 편이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을 취재한 사진기자는 집권 초기를 제외하고 전무하다. 비공개 행사로 대통령실 전속사진사가 찍은 사진이 제공됐다. 국무회의를 비롯해 대통령실의 공개된 행사여도 경호상 대통령을 근접해서 취재할 수는 없다. 이런 폐쇄적 취재 환경은 국회도 마찬가지다. 국회 출입기자들이어도 미 의회처럼 회의장 1층에서 취재를 할 수 없다. 항상 사진기자들은 2층 방청석에서 망원렌즈를 이용할 수밖에 없고 거리가 많이 떨어진 이유로 국회 본회의장에서 취재한 사진은 항상 똑같은 앵글에 단조롭다는 지적이 있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2023년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을 취재할 때 당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1m 거리에 두고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이야기를 나누며 회담장으로 걸어오면 바이든이 두 정상을 맞아주는 약속된 ‘포토 포인트’였는데 공교롭게도 미리 나온 바이든과 사진기자들이 동선에 섞여 있다시피 했다. 미국의 오벌 오피스 취재처럼 허용된 취재의 경우에는 매우 관용적인 것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트럼프의 공식 사진이 8년 전 활짝 웃는 표정에서 눈썹을 치켜올린 채 카메라를 노려보는 표정으로 바뀐 것처럼 사진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 정치에서 사진은 단순한 시각적 표현이 아니고 대중의 감정을 움직이는 강력한 도구로 인식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접근을 가로막고 제한하려고만 하는 풀(pool) 취재(공동 취재)같이 폐쇄적인 취재 환경은 단조롭고 지루한 사진을 남기며 이는 ‘불통’의 이미지를 낳을 수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정치 환경이 같을 순 없겠지만, 우리 스스로 폐쇄적이 돼 트럼프처럼 사진을 ‘이미지 정치’에 활용할 기회를 박차버린 건 아닐까?

최혁중 사진부 차장 saji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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