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찾은 영양군 석보면 법성사의 대웅전과 요사채는 폭삭 주저앉은 채 지붕의 슬레이트만 흩뿌려져 있었다. 정봉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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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은 제가 자식이긴하지만 정말 존경할만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천상 스님이셨어요.”
영양을 덮친 ‘괴물 산불’에 소사 상태로 발견된 주지 선정스님(85)의 아들이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27일 찾은 영양군 석보면 법성사의 대웅전과 요사채는 폭삭 주저앉은 채 지붕의 슬레이트만 흩뿌려져 있었고 선정스님의 큰 딸과 둘째 아들만이 황망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의 ‘큰 어른’으로 덕망이 높던 선정스님은 1년 전 법당에 올라가다가 다친 허리의 영향으로 하반신을 거의 쓰지 못한 채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요사채에서 지냈다고 한다. 그렇게 요양보호사가 퇴근한 지난 25일 저녁 화마가 법상사를 삼켰고 선정스님은 슬레이트 아래에서 발견됐다.
이날 만난 동네주민들은 입을 모아 선정스님의 인품을 칭찬했다. 법성사에서 1㎞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우아무개(74)씨는 “법성사는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 격이었다. 운동하러 가면 스님이 꼭 떡이나 과일을 내주시면서 ‘먹고 가라’고 권했고 농사짓는 분들껜 ‘농사는 좀 어떠냐’며 항상 안부를 물었다”며 “걷지 못하셔서 손으로 땅을 밀며 이동하셨는데 불이 났을 때 제대로 피하지도 못하셨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선정스님의 아들은 “어머님이 9살 때 동해안 쪽에서 외할머니 두분과 피난을 오셨는데 울진 어느 민가에서 미역국에 밥을 먹으며 하룻밤 도움을 받으셨다고 하더라”라며 “평생 그 고마움이 가슴에 있어 항상 밥솥에 밥을 아주 많이 해놓으시곤 지나가다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밥 잡숫고 가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선정스님은 자식을 모두 출산하고 남편과 함께 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27일 찾은 영양군 석보면 법성사의 무너진 요사채 앞엔 둘째 아들이 놓은 아이스크림과 김밥, 막걸리가 놓여져 있었다. 평소 이가 좋지 않던 선정스님은 아이스크림을 즐겨 찾았다고 한다. 정봉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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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지으며 아랫마을에 사는 딸이 저녁마다 밥을 챙겨줬지만 산불이 확산된 25일 저녁은 그럴 수 없었다. 선정스님의 첫째 딸은 “농사일을 마칠 때쯤 주변이 완전 불바다가 됐다. 불이 확산되는 데 5분도 안걸렸다. 112, 119 전화도 안됐다”며 “요양보호사가 아침만 해도 미역국이랑 밥을 잘 먹었다고 전했는데, 우리는 그게 어머님의 마지막 소식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들은 “연로하신 나이라 거동도 못하시고 귀가 안 좋으셔서 대화를 거의 못했다. 그게 정말 한이다”라며 “마루에 앉아서 바깥과 경치를 쳐다보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와서 차 한잔 하라고 하시곤 했는데 그 모습이 마음에 많이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27일 찾은 영양군 석보면 화매2리의 우아무개(74)씨 집 앞 텃 밭. 해당 텃밭은 숨진 삼의리 이장 권아무개(60)씨 부부의 소유로 화마가 덮친 저녁까지 권씨부부는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끝마쳤다고 한다. 정봉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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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선정스님뿐만 아니라 화마로 목숨을 잃은 이웃들을 회상하며 눈물을 지었다. 지난 25일 일원면 가곡리에 거주하고 있던 90살 할머니가 잠시 불길을 피하기 위해 석보면 화매리에 위치한 지인의 집에 왔다가 홀로 대피하지 못한 채 숨졌다. 이날 화매2리 복지센터에서 만난 가곡리에 거주한다는 ㄱ씨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공공근로 노인 일자리에서 같이 활동했었는데 마을회관 청소나 길거리 쓰레기 줍기를 했었다”며 “성실하기로 1등이셨다. 연로하심에도 아주 건강하셨고 인심도 좋고 남을 털끝하나 해할 성격이 아니셨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봉사소장을 포함해 많은 주민들이 안타까워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삼의리 이장 권아무개(60)씨 부부가 처남댁을 태우고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대피소로 향하지 않고 마을쪽으로 차를 몰다가 숨졌다. 숨진 권씨 부부가 본인의 집 앞 논에서 농사를 지어 가끔 커피를 내어주곤 했다는 우씨는 “사고 당일 저녁 불이 나고 있음에도 논에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다 마치고 대피를 했다”며 “두 부부 모두 성실한 일꾼이었다. 우리는 텃밭을 괭이로 가꿨는데 이장 부부가 ‘힘들게 그렇게 하지말라’며 선뜻 트렉터로 30평되는 텃밭을 갈아주기도 했다. 그런식으로 동네 농사를 항상 도와줬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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