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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 (목)

바흐의 ‘단심가’…솔에서 다음 솔로 삶은 튀어 오르더라도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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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스테인드글라스에 장식된 성인들과 루터에 영감을 받아 연주 중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 위키미디어 코먼스


같이 들을 클래식
바흐, 칸타타 ‘나는 한쪽 발을 무덤에 딛고 서 있네’(BWV 156)



시끌벅적한 카페. 한쪽 구석에 앉아 울고 있는 사람. 저예요. 누가 울렸냐고요? 이 음악을 만든 분, 위대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랍니다. 소란한 군중 속에서, 바흐의 음악과 함께 홀로 완벽하게 다른 세상을 만납니다.



수년 전부터,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저는 의외의 장소로 간답니다. 오디오로 음악을 감상하는 청음회를 진행하고 있거든요. 내가 이미 알던 음악이라도, 해설과 함께 고음질의 오디오로, 또 여러 사람이 같이 모여 들으면 훨씬 더 귀에 쏙쏙 들어오고 즐겁습니다. 오디오 청음회에 출연하는 것이 제게도 큰 공부가 되고 감사한 마음인데요, 매해 저를 찾아주시는 관계자분과 감상자분들의 단심이 느껴져 더욱 가볍고 즐거운 발걸음으로 향한답니다.



‘단심’은 고려 시대 정몽주가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한 답가로 쓴 ‘단심가’에 등장하는 ‘일편단심’(一片丹心)의 바로 그 ‘단심’입니다. 요즘은 ‘단심가’보다는 ‘하여가’의 시대라고 해야 할까요? 심지어 ‘일편단심’이라는 단어는 접하기조차 어려워지고 있어요. 하지만 자신이 맡은 일을 소명으로 여기고 오직 한길만을 가려면 일편단심이 있어야겠지요.



제가 눈물을 흘린 건, 바흐의 음악이 단지 아름다워서가 아니에요. 바흐의 삶을 알게 된다면, 그의 음악에 그의 삶이 겹쳐지며 나오는 눈물이죠. 300년 전, 바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 그 몫이 오직 하나님을 향해 경건한 음악을 바치는 것이었어요. 이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겼고, 그는 평생 ‘일편단심’이었습니다. 일평생 일요일의 음악가로, 교회 음악에 천착했지요. 또 주일 예배를 위한 30분가량 길이의 칸타타를 일주일에 한 곡씩 써내야 했는데요, 바쁜 교회 업무로, 밤이 돼서야 드디어 작곡할 시간이 생겼으니, 방대한 분량의 음악은 주로 밤에 탄생했어요.



바흐는 1723년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의 예배 음악 총책임자인 칸토르(Cantor)로 부임합니다. 이곳에서 죽기 전까지 마지막 27년간 재직하지요. 1729년, 바흐는 칸타타 BWV 156을 작곡하고, 1월23일 일요일 예배에서 연주합니다. 이 칸타타의 제목은 2악장 아리아의 제목인 ‘나는 한쪽 발을 무덤에 딛고 서 있네’를 사용합니다.



이 곡은 편의상 ‘바흐의 아리오소(Arioso)’로 불리는데요, 본래는 이 칸타타의 1악장 신포니아(Sinfonia)예요. 칸타타에서 신포니아는 일종의 ‘서곡’이에요. 이 곡은 제가 바흐의 인생에 관해 쓴 책 중 가장 마지막 부분에 썼을 정도로 무척 중요한 곡이에요. 바흐가 쓴 작품이 1100곡가량이고, 악장별로 따지면 5500개가량이나 되는 작품 가운데 제가 바로 이 곡을 가장 중요한 곡으로 뽑았다면 얼마나 중요한 곡인지 아시겠죠. 이 곡을 올해 오디오 청음회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연주로 감상했어요. 음악이 자신의 소명임을 음악으로 보여주는 아티스트, 그의 연주에 다시 한번, 그 눈물 흘렸던 상념에 빠지더라고요.



칸타타 원곡에서는 첫 시작부터 오보에가 구슬픈 음색을 들려줍니다. 아마도 바흐가 오보에 협주곡으로 썼던 곡을 재사용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바흐는 자신이 좋아한 선율을 이 곡 저 곡에 재사용했어요. 바흐뿐 아니라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은 ‘자기 복제’를 즐겼답니다. 당시엔 빈번한 일이기도 했어요.



이 선율에는 여러 차례의 점프가 들어 있어요. 우리가 노래를 부를 때, 갑자기 도약이 생기면 어렵게 느끼지요. 실제로 어렵고요. 그래서 조금은 뜸을 들이며 그 도약음을 찾아가며 노래하게 되는데요, 첫 시작에서 ‘시∼도레미, 라∼시도레, 솔∼’ 이렇게 질서 있게 순차적으로 흐르던 선율은 바로 이 ‘솔’에서 한 옥타브 위의 ‘솔’로 훅 뛰어오릅니다. 이토록 힘겨운 점프라니! 우리 삶에도 종종 굴곡이 찾아오지요. 당시 선율에서의 도약은 최대 옥타브, 즉 8도까지가 듣기 좋은 범위로 허용되었는데요, 이 최대치의 점프는 이 선율의 특징적 요소가 됩니다. 저는 이 곡을 들으며 나의 몫과 소명, 그것을 지켜가며 겪는 고난과 어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바흐는 이 선율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는지, 10년 후, 건반악기를 위한 협주곡 5번, BWV 1056의 2악장 라르고(Largo·매우 느리게)에서 수많은 장식음을 곁들여 재사용합니다. 심지어 바이올린 협주곡으로도 둔갑하지요. 작곡할 시간이 부족했던 교회 음악가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다가옵니다. 하물며 바흐의 동료 작곡가인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1681~1767)도 이 선율을 가져가서 자신의 협주곡에 사용했는데요, “텔레만 씨, 이건 자기 복제라고 하기엔 곤란한데요?”



아리아는 ‘성악으로 부르는 선율’을 의미하고, 아리오소는 ‘기악으로 연주하는 선율’을 의미해요. 본래는 신포니아이지만 아리아와 병치된 개념으로, 또 특히 이 곡만 단독으로 연주될 때 간편하게 ‘아리오소’라 부릅니다.



바흐의 아리오소는 딱 스무 마디입니다. 단 스무 마디가 수천 개의 다른 연주로 탄생했지요. 그중 영국의 전설의 명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1882~1977)가 편곡한 연주를 꼭 들어보세요. 그가 고른 주인공 악기는 바로 첼로예요. 첼로는 주인공 바흐로 분해 연주하다가 또 이따금 바이올린에 의지하기도 합니다. 바흐의 ‘아리오소’를 들으며, 나의 일편단심에, 또 고통 없이 쉬운 게 없는 우리 인생에 눈물이 고일지도 모르겠어요.



안인모 피아니스트



한겨레

안인모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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