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국어사전에 ‘친일’ ‘반미’ 있고 ‘친미’ ‘반중’은 없는 까닭

0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서로 친한 평온한 상태보다는 갈등이 생기거나 증오가 들끓을 때 얘깃거리가 늘고 편가르기가 정치 담론에서 더 먹히는 경향도 다분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집단의식과 정체성은 양날의 칼
갈등과 증오가 정치 활용도 높아
‘코스탤지어’로 뒷걸음질 안 돼



우리는 감정을 보통 개인적으로 느끼게 마련이라서 남의 감정을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사람마다 공감 능력이나 감정 이입의 정도도 다르다. 그러나 기쁨과 슬픔은 함께 나누며 커지기도 하듯이, 감정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도 형성되고 역사적으로 쌓여 민족이나 국민처럼 한 집단의 문화적 기억으로도 이어지곤 한다. 개개인이 모두 똑같지는 않더라도 동시대인들이 느끼는 비슷한 정서도 있다. 집단의식은 악의를 가진 누군가가 왜곡시킬 수도 있으나 함께 사는 사회를 훌륭하게 일구어 나가는 원동력도 되는 양날의 칼이다.



국민감정 중의 하나인 애국심은 내적으로는 자국민끼리 뭉치고 외적으로는 우방국이나 적대국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마음이다. 하지만 외국을 향한 감정은 호감보다는 반감이 두드러진다. ‘감정/정서’ 앞에도 ‘반미/반일’이 ‘친미/친일’보다 훨씬 자주 붙는다. 영어도 anti-American sentiment(반미 감정), anti-immigrant sentiment(반이민 정서)가 pro-American(친미), pro-immigrant(친이민)보다 자주 언급된다. 서로 친한 평온한 상태보다는 갈등이 생기거나 증오가 들끓을 때 얘깃거리가 늘고 편가르기가 정치 담론에서 더 먹히는 경향도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중적인 감정은 영어 public/popular sentiment/feeling(민심)에 해당하는데 사실상 public opinion(여론)과 뉘앙스만 좀 다른 동의어다. ‘민심’은 왠지 술자리에서 시끌벅적 주고받는 날것이라면 ‘여론’은 설문지나 전화로 차분히 답하는 것일 텐데, 겉으로야 다를지언정 속내는 큰 차이가 없다. 집단의 감정도 자주 요동친다. 평소에는 친하거나 적어도 데면데면하던 나라들 사이도 전쟁이나 이에 버금가는 사태가 발생하면 국민감정도 갑자기 악화되다가 다시 풀리기도 한다. 외국에 대한 적개심 같은 민심을 ‘기분’, ‘분위기’로 나타내는 독일어(Stimmung), 덴마크어(stemning), 러시아어(настроение), 폴란드어(nastrój), 체코어(nálada)도 있다. 영어 sentiment(감정, 정서, 정조[情操])는 mood(기분, 분위기)보다는 지속적인데 집단 정서를 보는 관점의 차이일 것이다. 예컨대 한국어에서 ‘반전(反戰) 분위기, 무드’는 통해도 ‘반일 분위기, 무드’는 뭔가 어색한데, 후자는 바닥에 오래 깔린 정서 같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친일’과 ‘반일’, ‘반미’는 표제어에 있는데 ‘친미’는 없다. ‘친일파’는 있지만 ‘반일파’는 없다. 한국이 미국과 친한 것은 당연하니 ‘반미’만 있겠고 소수의 반역자로 전제되는 ‘친일파’만 지칭하면 됐으며 역사가 짧은 ‘친중’, ‘반중’은 아직 표제어로 없다. 대개는 강대국이나 이웃 나라에 반감이나 친근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기에 사전에 있든 없든 반(反), 친(親)이 붙는 나라는 적다. 한국도 국력이 커지면서 anti-Korean sentiment(반한 감정)이라는 말도 많이 쓰인다. 일본에서 생긴 혐한(嫌恨)은 한일 관계의 복잡성도 염두에 둬야 하나 더욱 커진 한국의 영향력과도 관계있다.



집단 정서는 그때그때 변모하지만 민심의 기저에서 꾸준히 흐르다 보면 집단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의 하나가 된다. 우리와 뭉치는 게 누구인가, 우리와 남들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도 중요하다. 러시아 영화감독 알렉산드르 소쿠로프는 ‘프랑코포니아’에서 친구랑 통화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 집에 있는데, 이제 막 유럽에서 돌아왔어(я дома уже, только вот вернулся из Европы).” 러시아는 유럽이 아닌가? 지리상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으니 유럽이자 아시아지만 유럽도 아시아도 아닌 셈이다. 러시아는 서유럽을 모델로 근대화를 추진한 역사도 있기에 아시아보다는 유럽과 동일시하는 러시아인이 많겠으나 상당수는 그냥 러시아의 독자성에 비중을 두어 따로 간주한다.



유럽이 어디까지인가는 늘 논란이다. 지리적으로 유럽 대륙인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에게도 ‘대륙’은 좁은 뜻의 유럽 대륙, 즉 프랑스나 독일 같은 나라를 일컫고, 유럽에 안 끼려는 편인 영국에서도 그렇다. 유럽은 문화 역사적 경계 설정도 문제가 되기에 다른 대륙보다 특이하다. 그만큼 유럽은 아직도 특권을 가진 대륙이라 볼 수도 있겠다. 유럽의 식민 지배를 거의 안 겪은 동북아시아의 중국, 한국, 일본에서 유럽은 여전히 바라볼 대상이다. 전에 이런저런 얘길 나눴던 이란 사람은 괴테는 알면서 바흐는 모르던데, 단적인 모습이겠으나 서유럽 (고급)문화 수용은 서남아시아, 인도, 동남아시아와 견주면 지리적으로 서유럽에서 가장 먼 한·중·일이 더한 편이다.



한국인이 느끼는 유럽도 대개는 호의적이다. 인도나 동남아,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 사람이 식민 종주국 유럽에 갖는 반감을 비롯한 복잡한 감정은 한국인이 그대로 공감하진 않을 것이다. 식민지를 직접 겪지도 않았고 지리적 거리도 멀기에 곧바로 적대감이 생기지 않으며, 또한 미국의 원류이면서 근대화와 현대 문명의 발상지로서 떠받들기도 한다. 유럽은 양차 세계대전의 피바람이 가장 세게 몰아쳤지만 이후에는 복지와 번영, 민주주의, 평화의 대명사가 됐다. 과거 프랑스나 영국을 비롯한 열강의 제국주의에 비판적이거나 활기가 없는 늙은 대륙이라고 깎아내리지 않는다면 한국인 다수는 유럽에 호감을 보인다.



이른바 서구화를 향해 달리던 한국이 미국과 유럽을 계속 모델로 삼아야 할까? 반일과 반중을 엎치락뒤치락하며 부정적 정념에 빠져 있는 게 좋을까? 옛 동독을 비롯한 동유럽은 공산권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향수는 독일어 동쪽(Ost), 향수(Nostalgie)를 합쳐 오스탈기(Ostalgie)라고 한다. 한국은 군사독재 시절이나 그전 혹은 다른 어떤 시절이든 향수에 잠겨 코스탤지어(Kostalgia)로 뒷걸음질할지 새로운 가치를 찾아 나아갈지 갈림길에 서 있다.



번역가



한겨레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한겨레 주요 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