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선 기자(overview@pressian.com)]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 3월의 마지막 주말, 시민들이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지연을 규탄하며 헌재 100미터(m) 앞에서 분노의 함성을 100초간 내질렀다.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2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17차 범시민대행진을 열었다. 비상행동은 이날로 '윤석열 파면' 범시민대행진 참가 연인원이 1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비공식 추산에 따르면, 이날 1만5000명이 모였다.
비상행동은 시민들과 함께 안국역 3번 출구와 6번 출구로 각각 행진한 뒤 헌재에 빠른 결단을 촉구하는 분노의 함성을 전하고 '윤석열 파면' 다섯 글자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펼쳤다. 시민들은 "헌재는 윤석열을 지금 당장 파면하라" 외에도 "내란 심판 지연 헌재를 규탄한다", "혼란을 방치하는 헌재는 규탄한다" 등을 연신 외쳤다.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시민들은 헌재를 향해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 한 모 씨(30대, 서울 거주)는 "(윤 대통령 변론 종결) 2주가 지나면서부터 초조했다. 3주째가 되니 '재판관들 도대체 뭘하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에) 화가 났다. 한 달이 지나니 불안해졌다. '혹시?'라는 의구심이 끊이지 않았다"며 "어느새 한 달이 넘었다. 그런데도 헌재는 답이 없다. 대체 얼마나 더 '윤석열 파면'을 외쳐야 하나"라고 말했다.
▲ 3월 29일 서울 종로구 서십자각 인근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17차 범시민대행진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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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자유 발언대에 오른 시민들도 헌재의 선고 지연을 강하게 비판했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노유근 씨는 "산불도 꺼지고 윤석열도 하루빨리 꺼졌으면 좋겠다"며 "파면은 헌법을 유린한 자에게 국민이 내리는 너무나도 당연한 법의 심판이다. 우리가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윤석열이 그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이 땅의 정의는 뿌리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스스로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밝힌 최유정 씨는 "4월 초가 생일인데 생일 때 쯤 되면 윤석열 파면 되고, 대화 주제가 대선으로 바뀌고, 평화로운 일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헌재를 향해 "대체 몇 주를 이렇게나 질질 끌고 있는 것인가. 시민 모두가 목격했던 너무나 명백한 내란 수괴의 선고에 이렇게 긴 시간을 소요할 필요가 대체 뭐가 있다는 말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무대에 올라 "대한민국 주권자 국민이, 헌재의 주인인 국민이 8명의 재판관에게 직접 명령하자"며 재판관 8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했다. 박 원내대표는 "문형재 재판관님, 이미선 재판관님, 정계선 재판관님, 이제 결단하십시오. 김형두 재판관님, 정경미 재판관님, 즉시 선고를 내리십시오. 김복현 재판관님, 정형식 재판관님, 조한창 재판관님,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지 마십시오. 을사오적의 길을 가지 마십시오"라고 목놓아 외쳤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무대에서 "헌재는 설명도 없이 선고를 미루고 있다"며 "지금 헌재가 선고를 미루는 것은 국민들의 불안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오만이다. 지금 헌재가 선고를 미루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재건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지금 헌재가 선고를 미루는 것은 내란 공범의 집권을 연장시키는 일이다"라고 했다.
이어 "국민들의 애간장은 녹아내리고 정의는 지연됐다. 지연된 정의는 결코 정의가 아니다"라며 "헌재의 시간은 끝났다. 지금은 국민의 시간이다. 이제 주권자 국민의 명령을 들어라. 헌재는 즉각 윤석열을 파면하라"고 외쳤다.
이날 시민들과 함께한 싱어송 라이터 정태춘 씨는 노래 공연 중간 직접 써온 메모를 꺼내 읽으며 "대한민국은 지금 야만의 벽 앞에 서 있다. 그 벽은 부당한 권력과 추악한 탐욕의 벽이다. 선동과 맹신의 광기, 무지몽매와 파시스트의 벽이다. 지성은 사라지고 폭력이 난무한다"며 "이 봄 여기 광화문의 꽃바람 속에 들리는 건, '저 벽을 깨라. 긴 겨울을 끝내라. 저 야만의 벽을 깨라'(라는 외침)"이라고 했다.
비상행동을 비롯한 시민단체와 종교계는 헌재에 대한 압박 수위를 더욱 높일 계획이다. 비상행동은 3월의 마지막 날과 4월이 시작되는 다음 주를 '4차 긴급 집중 행동 기간'으로 선포하는 한편 다음 달 1일과 2일 양일간 '24시간 집중 행동'을 펼칠 것이라고 했다.
또 개신교·불교·원불교·천도교·천주교 등 5대 종단은 다음 달 5일까지 매일 오후 6시 기도 및 공동 타종 행동을 전국 동시다발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들은 공동 타종은 "국가적 혼란과 헌법 질서 훼손을 더는 용인하지 않겠다는 경종, 윤석열 탄핵 선고를 미루는 헌재를 꾸짖는 경종"이라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 3월 2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윤석열 대통령 찬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왼쪽은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17차 범시민대행진, 오른쪽은 자유통일당 탄핵 반대 집회.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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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탄핵 반대 세력도 전국 각지에서 집회를 열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주축으로 한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는 이날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광화문 국민대회'를 열었다. 오후 2시 30분 기준 경찰 추산 2만 3000명이 모였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도 마이크를 잡았다. 윤 의원은 "바야흐로 탄핵 기각의 시간이 다가왔다. 탄핵 기각은 희망 사항이 아니다. 탄핵 기각은 현실이고 사실"이라며 "여러분이 탄핵 기각을 외치면 외칠 수록 대통령이 복귀하는 시간이 빨라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항소심 무죄 선고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대한민국 사법사의 치욕의 판결이다. 어떻게 1심 징역형이 2심에서 무죄로 판결이 날 수 있나.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재판, 로또 재판, 도박판으로 만들었다"며 "대법원은 빨리 파기 작파를 해야 한다. 대법원 스스로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임한나 자유통일당 경기도 청년대표는 이 대표 비하 표현인 '찢재명'이 섞인 구호를 연호하며 이 대표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는 이날 울산 남영구 번영사거리에서 국가비상기도회를 진행했다. 주최 측 추산 3만 명, 경찰의 비공식 추산 5000명이 집결했다.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는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국가적 위기를 중국 탓으로 돌렸다. 전 씨는 "우리 역사를 보면 중국은 꾸준히 우리나라를 침입하려 했고, 지금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받고 있다. 까딱 잘못하면 홍콩처럼 될 수 있겠다는 위기감도 나온다"며 "밖으로는 중국이 침입하고 안으로는 우리끼리 반토막 난 탄핵 정국 속에서 사회적 갈등이 심하고, 경제는 추락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 경제를 살리고 국정을 정상화하는 아주 간단하고 상식적인 방법은 헌재가 대통령 탄핵을 기각해 (윤 대통령을) 직무 복귀시키고 국가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명선 기자(overvie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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