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경남 산청군 시천면 신천리 동당마을에서 만난 박호규 산청군 읍면체육회 연합회장(65)이 마른 기침을 해대며 이렇게 말했다. 화마가 휩쓸고 간 주택과 밭, 뒷산 자락에서 희멀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박 회장은 연기로 인해 잔뜩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밭과 산자락을 향해 멈춤 없이 물줄기를 쏘아댔다. 박 회장 등 12명으로 구성된 연합회장단은 산청 산불이 발생한 21일부터 이날까지 9일 동안 자체적으로 확보한 펌프차를 이용해 잔불 진화에 나서고 있다. 박 회장은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산불 현장과 가까운 마을을 돌며 잔불을 끄는 작업을 돕고 있고, 받아온 물을 소방펌프차에도 공급하고 있다”며 “물을 뿌리고 받아온 물을 소방펌프차에 채워주고 있다”며 “회장들 모두 생업을 제쳐두면 수십, 수백만 원 손해를 입지만 마을과 주민들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해 나섰을 뿐이다”고 말했다.
30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산불 현장에서 산청군 읍면체육회 연합회 자원봉사자들이 도로 주변 잔불 정리를 하고 있다. 산청군 읍면체육회 연합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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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앞에 더욱 뜨거운 이웃사랑
경북 북동부와 경남 산청군 등 대형 산불 피해 지역 곳곳에 이재민들을 돕기 위한 도움의 손길이 답지하고 있다. 같은 날 찾은 산청군 단성중 체육관 앞에서는 대한적십자사 산청군 소속 봉사자인 강정숙 씨(60)가 실의에 빠진 이웃들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었다. 강 씨뿐 아니라 음식을 식판에 퍼주는 봉사자들 봉사단원 상당수가 이번 산불 피해를 입은 이재민이라고 했다. 강 씨와 자원봉사자들은 오전 5시 반부터 식사를 준비하고 거동이 힘든 어르신들에게는 급식판에 밥을 담아 텐트로 직접 가져다 주기도 한다. 저녁 식사 배식이 끝나면 설거지를 한 뒤 다음날 장까지 본다. 오후 10시를 훌쩍 넘는다고 한다. 강 씨는 “1998년 지리산 자락에 내린 집중호우로 수해를 입었을 때 당시 봉사자들의 헌신을 보고 봉사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며“지금 봉사자들 가운데 상당수도 산불에 큰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이다. 그래도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고 함께 일어나고 싶어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산불 피해가 심했던 안평면의 한 마을에서는 피해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온 박모 씨(54)가 일손을 거들고 있었다. 박 씨는 “고향에 남아있던 친구가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구에서 찾아왔다. 주중에 휴가라도 내고 한동안 도와주고 싶은 심정인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피해지역 주민들은 밤낮 고생하고 있는 진화대원들을 위해서도 지역 상인들도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있다. 청송에 있는 한 식당은 26일부터 출입문에 ‘소방관분들은 당분간 식사 무료 제공’이라는 안내문을 붙이고 소방관 등 진화대원에게 무상으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업주는 “지역을 위해 힘써주시는 소방관이나 산불진화대원의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작은 성의를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영덕군 강구면의 한 카페도 27일부터 산불 진화대원과 공무원, 경찰 관계자 등에게 아메리카노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카페측은 갑작스러운 산불로 밤낮이 바뀔정도로 고생중이신 분들을 위해 작은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의성의 카페 비야에서도 24일부터 산불진화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무료커피를 제공하고 있다. 산불 사태가 완전히 끝날 때 까지 무료커피를 제공할 방침이다.
대피소 생활중인 이재민들이 극심한 불편을 겪고 있다는 소식에 전국 각지에서 온 각종 단체 자원봉사자가 연일 급식, 세탁, 의료지원 등 활동을 펼치고 있다.
경북 의성군 대피소가 마련된 의성체육관 앞에서는 구세군과 대한불교 조계종 등 서로 다른 종교가 한마음 한 뜻으로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함께 식사 1000인 분을 준비해 단전, 단수를 겪는 피해마을 곳곳에 전달했다. 안솔베 구세군 원당영문교회 담임사관은 “재난 앞에 종교의 차이가 어디있냐”며“조계종 쪽에서 된장국 조리를 맡았고 구세군은 육개장을 끓이며 메뉴가 겹치지 않도록 협동해 조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성=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산청=도영진
의성=전남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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