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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1487] 해인사에 묻어놓은 소금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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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지역 산불로 천년 고찰 의성 고운사(孤雲寺)가 전부 불에 탔다. 목조건물인 사찰에 화재가 발생하는 경우는 자주 있는 일이다. 사찰 화재는 누군가 앙심을 품고 고의로 방화를 하거나 아니면 실수로 불이 나거나 한다. 그래서 사찰 주지를 맡으면 가장 신경 쓰는 일이 화재 방지다. 이번처럼 대규모 산불로 인하여 절이 불에 탄 경우는 매우 드문 사례다.

조선 시대 기록을 보면 금강산의 유점사(楡岾寺)가 여러 번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왕실의 특별한 지원으로 복구된 사례가 눈에 띈다. 1452년에 유점사 143칸이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당시 주지가 한양으로 불려 올라와 엄중한 조사를 받았다. 유점사의 승려들이 효령대군에게 지원을 부탁했고, 효령대군의 부탁을 받은 임금의 특별한 지원으로 건물이 복원됐다. 정부기관인 예조에서도 강원도 전체에서 경비를 걷어 지원했다. 1595년에도 또 화재가 나서 절이 불탔는데 승병장이었던 사명대사가 인목왕후에게 부탁하여 왕실의 비용으로 다시 복원했다. 1759년에도 불이 나자 왕실에서 지원해 10년간 복원 공사가 진행되었다. 조선 말기 고종 때에도 유점사 3000칸의 전각이 소실되자 고종이 공명첩 500장을 발행하도록 허가해 건축비를 지원했다.

조선조는 억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유점사는 그 영험함으로 인해 왕실의 지극한 보호를 받았던 것이다. 유생들이 격렬한 반대를 했지만 무시하고 조선 왕실은 금강산에 대한 특별한 불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금강산은 개골산(皆骨山)이라는 명칭에서도 드러나듯이 온통 뾰족뾰족한 바위산이다. 불꽃의 형태인 화체산(火體山)은 화재가 자주 발생한다는 게 감여가(堪輿家)의 주장이다. 설악산도 역시 바위 봉우리들이 불꽃같이 생긴 화체산에 해당한다. 그래서 설악산의 사찰에서도 불이 많이 났다. 백담사(百潭寺)라는 이름도 화재 예방 차원에서 지은 작명이다. 100개의 연못이 있으면 그 물로 불을 끌 수 있다는 바람이 투사되어 있는 이름이다.

또 하나의 유명한 화체산이 합천 가야산이다. 특히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어서 화재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몇 년 전에 강연을 가서 주지 스님에게 들으니 법당 주변 여러 군데에 소금 단지를 묻어 놓았다고 한다. 매년 날짜를 잡아서 소금을 새로 채워 넣는 게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절의 전통이다. 소금을 묻어 놓으면 화재를 예방할 수 있다는 비보풍수의 전통을 눈으로 확인한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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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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