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국가 원로 토론회 유감
그들 애국 충정 의심하지 않지만
대부분 87체제에서 전성기 보내
헌법 탓보다 성찰 먼저 했어야
원로 되기 위한 최우선 조건은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책임
후대에 보탬 되는 지혜와 경륜
그에 걸맞은 활동을 기대한다
지난 4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국가미래전략원 정치개혁 대담회 '국가원로들, 개헌을 말하다' 토론회 모습. /김지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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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서울대는 국가미래전략원 주최로 “국가 원로들, 개헌을 말하다”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정당 대표 등을 지낸 여야 정치 원로 12인이 참석했다. 이날 각자가 나름의 이유로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현장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일부는 서면 의견서를 제출하여 개헌론에 힘을 보탰다. 또한 이들은 ‘나라를 걱정하는 원로 모임’을 구성한 다음 이튿날 서울역 광장에서 ‘헌법 개정 범국민 결의 대회’를 열고 전국적 서명 운동을 시작하였다. 최근 각종 언론 매체에서도 원로 명의의 기고나 대담, 출연이 부쩍 늘었다.
이들의 애국 충정을 어찌 의심할까만, 이런 모습이 일반 국민 눈에는 다소 불편한 측면이 있다. 여야를 불문하고 이들 대부분은 1987년 헌법 체제하에서 정치적 경력의 전성기를 보낸 사람들이다. 그러다가 돌연 현행 헌법을 바꾸자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다’는 뜻인가? 이 세상에는 체계화된 성문헌법 없이 법률과 판례, 관습 등을 통치 질서의 기본으로 삼는 영국 같은 나라도 있다. 이는 한국 정치의 궁극적인 문제가 헌법도 아니고 국민 수준도 아닌, 오롯이 정치인 자신들의 자질이나 역량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국회의장이나 국무총리, 당 대표 등을 지내고 서울대가 국가 원로로 예우할 정도의 정치인이라면, 오늘날 한국 정치가 이렇게까지 망가진 점에 대해 그저 헌법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치열한 자기 성찰부터 먼저 해야 옳았다. 그게 대학 캠퍼스를 찾아가 미래 세대를 만날 때 취했어야 할 진정한 국가 원로의 자세다. 정파나 당파를 떠난 초연한 입장에서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현역 시절보다 은퇴 이후에 더 빛나는 선수가 가끔 있는 법이다. 바둑을 두는 당사자보다 곁에서 훈수 두는 사람이 수를 더 잘 보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한자로 풀이하면 원로(元老)는 ‘으뜸가는 노인’쯤 된다. 그리고 이들의 가치는 후대에 두고두고 보탬이 되는 지혜와 경륜에 있다. 우리가 원로 가수나 재계 원로, 원로 학자 등을 예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유난히 원로가 없어 보이는 영역이 우리나라 정치권이다. 과연 거의 모든 사회 조사에서 정치인은 존경은커녕 부동의 불신 1위 집단이다. 그럼에도 현역을 떠난 후 이들이 다시 국가 원로 대접까지 받는 것이 현재의 관행이다. 이게 전통처럼 되어 만약 작금의 탄핵 정국을 주름잡는 이들까지 훗날 국가 원로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한다면 너무나 아찔하고 끔찍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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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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