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朝鮮칼럼] ‘국가 원로’를 생각한다

0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서울대 국가 원로 토론회 유감

그들 애국 충정 의심하지 않지만

대부분 87체제에서 전성기 보내

헌법 탓보다 성찰 먼저 했어야

원로 되기 위한 최우선 조건은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책임

후대에 보탬 되는 지혜와 경륜

그에 걸맞은 활동을 기대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국면에서 봇물 터진 듯 활발해진 것이 개헌론이다. 소위 ‘87년 체제’를 청산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자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직무 복귀를 전제로 남은 임기 중 개헌을 공언한 가운데,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유력 정치인 대부분이 이에 호의적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빼고는 그렇다. 여기에 이른바 국가 원로들 역시 작금의 개헌 논의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

지난 4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국가미래전략원 정치개혁 대담회 '국가원로들, 개헌을 말하다' 토론회 모습. /김지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달 초, 서울대는 국가미래전략원 주최로 “국가 원로들, 개헌을 말하다”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정당 대표 등을 지낸 여야 정치 원로 12인이 참석했다. 이날 각자가 나름의 이유로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현장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일부는 서면 의견서를 제출하여 개헌론에 힘을 보탰다. 또한 이들은 ‘나라를 걱정하는 원로 모임’을 구성한 다음 이튿날 서울역 광장에서 ‘헌법 개정 범국민 결의 대회’를 열고 전국적 서명 운동을 시작하였다. 최근 각종 언론 매체에서도 원로 명의의 기고나 대담, 출연이 부쩍 늘었다.

이들의 애국 충정을 어찌 의심할까만, 이런 모습이 일반 국민 눈에는 다소 불편한 측면이 있다. 여야를 불문하고 이들 대부분은 1987년 헌법 체제하에서 정치적 경력의 전성기를 보낸 사람들이다. 그러다가 돌연 현행 헌법을 바꾸자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다’는 뜻인가? 이 세상에는 체계화된 성문헌법 없이 법률과 판례, 관습 등을 통치 질서의 기본으로 삼는 영국 같은 나라도 있다. 이는 한국 정치의 궁극적인 문제가 헌법도 아니고 국민 수준도 아닌, 오롯이 정치인 자신들의 자질이나 역량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국회의장이나 국무총리, 당 대표 등을 지내고 서울대가 국가 원로로 예우할 정도의 정치인이라면, 오늘날 한국 정치가 이렇게까지 망가진 점에 대해 그저 헌법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치열한 자기 성찰부터 먼저 해야 옳았다. 그게 대학 캠퍼스를 찾아가 미래 세대를 만날 때 취했어야 할 진정한 국가 원로의 자세다. 정파나 당파를 떠난 초연한 입장에서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현역 시절보다 은퇴 이후에 더 빛나는 선수가 가끔 있는 법이다. 바둑을 두는 당사자보다 곁에서 훈수 두는 사람이 수를 더 잘 보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사실 ‘국가 원로’라는 용어는 현행 헌법에도 나온다. ‘국가원로자문회의’ 구성에 관한 헌법 제90조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국가 원로의 구체적 범주와 자격이 명시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둔다’(기속 행위)가 아닌 ‘둘 수 있다’(재량 행위)로 되어 있는 바, 1987년 헌법 개정 당시부터 사실상 사문화(死文化) 상태다. 적어도 헌법상으로는 국가 원로가 공석인 셈이다. 전직 대통령이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을 맡는다고 했는데, 적대적 정권 교체가 관행이 되다시피 한 작금의 정치 현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단견(短見)의 소치였지 싶다.

한자로 풀이하면 원로(元老)는 ‘으뜸가는 노인’쯤 된다. 그리고 이들의 가치는 후대에 두고두고 보탬이 되는 지혜와 경륜에 있다. 우리가 원로 가수나 재계 원로, 원로 학자 등을 예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유난히 원로가 없어 보이는 영역이 우리나라 정치권이다. 과연 거의 모든 사회 조사에서 정치인은 존경은커녕 부동의 불신 1위 집단이다. 그럼에도 현역을 떠난 후 이들이 다시 국가 원로 대접까지 받는 것이 현재의 관행이다. 이게 전통처럼 되어 만약 작금의 탄핵 정국을 주름잡는 이들까지 훗날 국가 원로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한다면 너무나 아찔하고 끔찍하지 않은가.

국가 원로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함부로 쓸 수 있는 말도 아니다. ‘공화정 로마는 곧 원로원’이라 할 정도로 로마가 나아가야 할 노선을 결정하고 기관차처럼 로마를 이끌어 갔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이때 원로가 되기 위한 최우선 조건은 나이가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곧 ‘높은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였다. 이에 고대 로마를 대표하는 원로 정치가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노인의 권위란 백발이나 주름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명예롭게 보낸 지난 세월의 마지막 결실”이라고. 이참에 우리도 국가 원로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봤으면 한다. 워낙 시절이 하 수상하니 더욱 그렇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5분 칼럼' 구독하기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주요 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