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토)

“정산일 공지하겠다”더니…발란, 기업회생 기습신청

0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서울 강남구 발란 본사가 있는 공유오피스 로비에 ‘발란 전 인원 재택 근무’라고 적힌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다. 2025.03.31.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24일 판매 대금을 판매자(셀러)들에게 지급하지 않아 미정산 사태를 일으킨 명품 유통 이커머스 1위 업체 ‘발란’이 31일 기습적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셀러들은 발란이 대금을 정산해 줄 것처럼 공지했다가 갑자기 기업회생을 신청했다며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명품 수요가 감소하면서 영업이익을 내지 못한 채로 덩치 불리기에만 치중하던 발란이 가장 먼저 쓰러진 가운데 다른 명품 플랫폼인 트렌비, 머스트잇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31일 발란은 최형록 대표 명의로 “올해 1분기(1~3월) 계획했던 투자 유치를 일부 진행했지만 자금 확보가 지연돼 단기적인 유동성 경색에 빠졌다”며 “상거래 채권을 안정적으로 변제하고 플랫폼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기업회생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회생 인가 전 인수합병(M&A)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회생 절차와 M&A를 병행, 외부 인수자를 유치해 상거래 채권을 변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번 주 매각 주간사회사를 지정하고 실행한다는 계획이다.

기업회생 절차는 법원에서 지정한 제3자가 자금을 비롯한 기업 활동의 전반을 대신 관리하는 제도다.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하면 곧바로 법원의 보전처분 및 포괄적 금지명령에 따라 압류, 추심, 경매 등 각종 민사 집행을 막을 수 있다. 부채는 동결돼 원금과 이자의 지급이 중지되고, 기업은 향후 발생하는 유동자금을 활용해 영업이익을 낼 수 있다.

발란이 기업회생 절차를 밟게 되면 정산금 지급은 당분간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유통업계의 전망이다. 지난해 판매 대금 미정산으로 1조 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와 비슷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발란을 인수하고자 하는 곳을 찾지 못하면 판매자들은 정산받아야 할 판매 대금보다 적은 돈을 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 발란의 월평균 거래액은 300억 원 안팎이며 전체 입점사 수는 1300여 개로 알려져 있다. 업계는 발란의 미정산 규모를 수백억 원대로 예상하고 있는 가운데 최 대표는 “현재 미지급된 상거래 채권 규모는 발란의 월 거래액보다 적다”고 설명했다.

아직 정산금을 받지 못한 셀러들은 발란의 기업회생 신청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발란과 거래해 온 셀러 장모 씨는 “발란이 두 번이나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대표의 입장문도 믿을 수 없다”며 “이번 주 내 형사고발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발란은 지난달 24일 첫 미정산 직후 “28일에 정산일을 공지하겠다”고 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일각에서 제기된 기업회생 신청 루머에도 “예정에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유통업계는 거래액 늘리기에 몰두했던 이커머스 업계의 관행적인 경영방식이 재무 건전성 악화를 초래했다고 보고 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 시기 급격하게 성장했던 이커머스 업계가 엔데믹 이후 불경기가 진행되면서 ‘옥석 가리기’ 상황이 온 것”이라며 “한계기업으로 속한 이커머스가 셀러와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정부의 관리 감독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2015년 문을 연 발란은 설립 이후 한 번도 영업이익을 낸 적이 없다. 최근 3년(2021~2023년)간 영업활동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사업을 하면서 손해만 봤다. 판매자에게 지급해야 할 대금은 2022년 84억3943만 원에서 2023년 107억1368만 원으로 늘었지만 매출은 같은 기간 891억3121만 원에서 392억4515만 원으로 줄었다.

이날 최 대표는 “이번 회생 절차를 통해 단기적인 자금 유동성 문제만 해소되면 빠르게 정상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밝혔지만 업계가 바라보는 전망은 부정적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발란은 그동안 본업 강화 대신 투자로 위기를 모면해왔다”며 “상장을 위한 투자, 거래액 증가에만 집중하는 등 티메프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발란발 명품 플랫폼 위기가 머스트잇, 트렌비 등 다른 곳으로 확산될 우려도 나오고 있다. 불경기로 명품 수요가 감소하면서 다른 곳들도 부진한 실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머스트잇은 79억 원, 트렌비는 32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이민아 기자 omg@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주요 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