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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투자 韓기업들, 샌프란 인구만큼 일자리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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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노믹스 2.0, 美서 뛰는 한국기업들] 창간 105주년 기획

韓, 2023년 31조원 투자 세계최대… 美활동 韓기업 작년 2432곳 달해

통상전쟁에도 ‘KORUS 협력’ 강화… “美는 포기 못하는 제2 내수시장”

美 곳곳 韓기업 이름 도로 표지판 국내 4대 그룹의 이름을 딴 도로 표지판이 미국 각지의 도로에 설치돼 있다. 국내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에 나서자 현지 당국이 감사의 뜻으로 만든 것이다. 왼쪽부터 미국 텍사스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부지 인근 ‘삼성 하이웨이’, 조지아주 SK온 배터리 공장의 ‘SK 도로’, 앨라배마주 현대자동차 공장의 ‘현대 도로’, 테네시주 LG전자 가전 공장의 ‘LG 하이웨이’ 표지판. 클라크스빌·커머스=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각 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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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 등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확대에 한국 경제가 큰 시험대에 올랐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이미 지난 수년 동안 미국의 정책 기조에 발맞춰 미국 내 생산시설을 늘리는 등 대미 투자를 크게 확대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미중 무역 갈등과 리쇼어링(생산시설 본국 회귀) 등 달라진 통상 환경 속에서 한국 기업들의 이런 노력으로 한미 경제 협력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31일 관계 당국과 산업연구원 등의 집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미국 진출 한국 기업들이 현지에서 직간접적으로 창출한 일자리(제품 배송, 판매 등 파생되는 일자리 포함)는 80여만 개에 이른다. 미국에서 샌프란시스코 전체 인구(2023년 80만9000명)와 맞먹는 사람들이 한국 기업 덕분에 일자리를 갖게 된 것이다.

한국은 또 미국 입장에서 봤을 때 세계 최대 투자국 반열에 올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2023년 215억 달러(약 31조 원)를 미국에 투자했다. 2010년대만 해도 10위권이던 것이 일본과 대만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집계한 해외직접투자(FDI) 통계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1위 투자 대상국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14년 연속 미국이었다.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체는 2432곳(한국무역협회 2024년 분석)에 이른다.

경제계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재집권과 무관하게 이제 한미 경제 관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전까지 국내에서 생산한 중저가 상품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니어쇼어링(멕시코 등 인접 국가로의 생산시설 이전)을 통해 미국에 수출해 왔다면, 이제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현지 기업과 협력해 새 시장을 개척하고 미국 현지 경제에도 기여하는 ‘코러스(KORUS·KOREA+US)노믹스 2.0’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윤성용 미한국상공회의소 부회장은 “미국은 인구가 3억 명이 넘고 소득 수준도 워낙 높아 한국 기업들에는 포기할 수 없는 ‘제2의 내수시장’이 됐다”고 말했다.

금성 첫 공장후 40년, 美투자 1000배로 “수출 넘어 제2 내수시장”

〈1〉 일자리-시장 넓힌 윈윈 투자
韓기업, 美 50개 주 중 47곳 진출… 제네시스 3대 중 1대가 美서 팔려
현대차 정의선 “‘뿌리’ 내리러 왔다”… 조선-에너지 등 진출도 가속화 전망
“R&D-생산 핵심은 한국에 둬야”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준공식을 연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의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직원들이 차량을 점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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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장을 짓기 위해 여기 온 게 아닙니다. ‘뿌리’를 내리기 위해 온 것입니다.”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에서 열린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메타플랜트) 준공식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한 말이다.

정 회장의 말처럼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은 이제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80억 달러(약 11조7000억 원)를 투자해 메타플랜트를 건립했다. 직접 찾아간 서울 여의도 4배 크기(1176만 ㎡)의 이 공장은 ‘가장 진보된 공장’이란 평가처럼, 한국과 미국의 최첨단 기술이 적용돼 있었다. 현대차 측은 “미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한 뒤 20년 동안 대미 수출과 국내 생산, 고용이 모두 늘었다”고 전했다. 이번 준공식이 ‘코러스(KORUS·KOREA+US)노믹스 2.0’ 시대의 막을 여는 상징적인 장면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 40년 만에 1000배 늘어난 美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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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0월. 금성사(현 LG전자)는 당시 550만 달러(약 80억 원)를 들여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연간 생산 12만 대 규모의 컬러TV 공장을 준공했다. 이 공장은 한국 업체가 미국에 처음 단독 투자한 ‘1호 공장’이다.

40여 년이 지난 현재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2432개 업체(2024년 기준)에 이른다. 한국무역협회가 기업정보업체인 D&B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한국 기업은 미국 50개 주 가운데 47개 주에 진출해 있다. 미국에서 한국 기업이 진출하지 않은 지역이 오히려 극소수란 뜻이다.

한국 업체들은 40년 동안 공격적으로 미국 투자를 늘렸다. 31일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24년 한국 기업들의 미국 대상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20억8438만 달러로 2014년 투자액(59억8599만 달러)의 3.7배로 늘었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15.4배, 30년 전의 42.7배, 40년 전의 1096.3배로 증가했다. 미국을 ‘제2의 내수 시장’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한국 기업들이 대미 투자를 늘린 것이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업종은 제조업이 가장 많다. 한국무역협회 분석에 따르면 2432개 업체 중 26.8%가 제조업에 해당된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각각 반도체와 가전을, 현대차그룹은 조지아주와 앨라배마주에서 자동차를, LG전자는 테네시주에서 가전 등을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비스업 분야에서 미국 진출 속도가 가파르다. 2021∼2024년에는 금융이나 부동산 등 서비스업의 미국 신규 진출이 42.9%로 가장 많았다.

한국 기업들이 만드는 현지 일자리도 급증했다. 1982년 금성사가 헌츠빌에 공장을 준공할 때는 5년 안에 3000명을 고용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수출입은행은 2023년 기준 한국 기업들의 북미 지역 고용이 총 11만3387명(한국인 포함)에 달한다고 밝혔다.

● ‘제2의 내수 시장’ 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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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노믹스 2.0’ 시대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이 단순히 미국에만 유리한 건 아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이다. 특히 수익성이 좋은 고급형·대형 제품이 많이 팔린다.

미중 갈등으로 중국 업체들이 미국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것 또한 한국 업체들이 최근 미국 투자를 늘리는 이유 중 하나다. 이미 현대자동차의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는 3대 가운데 한 대가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LG전자의 고급 주방 가전 브랜드 ‘SKS’는 전체 매출의 80% 이상이 북미에서 발생한다.

미국엔 한국 기업들의 ‘큰손 고객사’도 많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 고객사인 퀄컴, 구글, IBM 등이 모두 미국 회사다. 국내 배터리 3사는 미국 자동차 ‘빅3’인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포드 등을 겨냥해 북미 지역에 공장을 늘리고 있다. 고객의 피드백을 곧바로 반영할 수 있고, 납품 대상과 가까운 덕에 물류비가 절약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앞으로는 조선, 소형모듈원전(SMR), 바이오 등의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미국 진출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로 인해 국내 산업이 공동화(空洞化)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전 세계 생산기지의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는 ‘마더 팩토리’를 한국에 만드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전 세계 생산기지에서 생산될 상품에 대한 핵심 기술 연구나 시험 생산, 글로벌 공급망 관리 등을 한국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핵심 업무를 맡기 때문에 청년 세대가 선호하는 고임금 일자리가 많이 배출된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신규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국내 중소기업과의 협력이 유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기에 핵심 연구개발은 국내에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러스(KORUS)노믹스 2.0
코러스는 한국(KOREA)과 미국(US), 경제학(Economics)을 합성한 말. 한미 경제 협력관계의 패러다임 전환을 뜻한다. 코러스노믹스 1.0은 양국이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교역에 치중하는 단계였다면, 코러스노믹스 2.0 시대에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진출해 사업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드는 유기적인 경제 관계로 도약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클라크스빌=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엘라벨=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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