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이은정 김지연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 '소통'(communication)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우리 정부가 '리더십 부재'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및 방위비 분담금 압박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북미 대화까지 본격화하면 '한국 패싱' 우려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3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위원장에게 연락(reach out)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Well, I do)"면서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통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아 현재 비공식적인 접촉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인지, 과거에 소통했던 사실을 재차 언급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미국이 북한과 외교 대화 재개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오랜 시간 교착 상태였던 한반도 정세가 향후 새로운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만약 북미접촉이 본격화한다면 비상계엄에 따른 탄핵 정국으로 인한 리더십 부재 상황에 현실적으로 한국의 목소리가 반영되기가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북미접촉이 이뤄지고 있다면 소위 '뉴욕채널'을 통했을 가능성이 있다.

뉴욕채널은 미국 영토에서 북한 당국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주재하는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를 통한 소통을 의미하는데,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마다 협상 및 위기관리 측면에서 역할을 수행해왔다.

과거 제1차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1994년의 북미 제네바 합의와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 성사 과정까지 소통 창구로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제한적이지만 지속적인 인적 교류가 가능한 외교 통로라는 점에서 북미가 이번에도 소통의 창구로 뉴욕채널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북한대표부 대사는 김 성으로 지난 2018년부터 대사직을 맡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미외교와 북핵협상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한 조철수 스위스 주재 대사의 역할을 거론하기도 한다. 최선희 외무상의 '오른팔'이라는 평을 듣는 그는 지난해 스위스 대사로 임명됐다.

북한 김정은, 쇼이구 러 국가안보회의 서기 접견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1일 방북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와 "반갑게 상봉하고 신뢰적이며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담화를 나눴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2일 보도했다. 2025.3.22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nkphoto@yna.co.kr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 서신 교환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트럼프 1기 북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던 시기에도 양측은 최고지도자 간의 '친서 외교'로 관계를 관리해온 바 있다.

여기에 러시아를 통한 우회적 접촉의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 미국이 북한과 소통 경로로 러시아 측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달 21일 북한을 방문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 대화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중요 친서'를 전달했는데,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는 이후 언론과 인터뷰에서 쇼이구 서기가 김 위원장에게 미·러 접촉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고 밝혔다.

일단 마체고라 대사는 "북한 지도부에 누군가의 중재가 필요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며 "북한과 미국에는 여러 가지 소통 채널이 있다"고 선을 그었지만, 북미가 초기 소통을 진행하는 과정에 러시아가 상호 입장을 전달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종전 협상 과정에 북한이 우크라이나 측에 잡힌 포로 관련 문제를 제기하거나 파병에 따른 '보상'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미국과 러시아 간 대화에 북한이 연계될 가능성에 우려를 더하는 부분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이미 협상은 시작이 됐다고 생각한다. 연락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친서가 될 수도 있고, 단순한 접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이어 "(이런 발언으로) 협상의 주도권을 트럼프가 쥐고 가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현재 북미 접촉이 실제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향해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차원에서 과장해서 이야기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당장 북미 간 직접적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접촉을 시도하거나, 접촉을 시도하기 위해 뭔가 준비하는 단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문제가 종결되거나 해결 국면이 되어야지만 북한 문제로 간다는 순차론보다 '투트랙'으로 가려는 분위기가 (미국에) 있다"며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북미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을 점쳤다.

외교부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한미는 북한과의 대화에 열려있다는 입장을 계속 밝혀왔다"고 밝혔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대해 "그는 큰 핵 국가(big nuclear nation)이고 매우 스마트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데 대해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공동성명 등을 통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북미대화가 북한의 비핵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당연히 환영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2019년 판문점에서 만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연합뉴스) 사진은 2019년 6월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만나 인사한 뒤 남측 지역으로 이동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2020.1.1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문제는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본격화하더라도 한국은 12·3 비상계엄 사태와 이어진 탄핵 정국으로 여전히 리더십 부재 상황이어서 미국의 정책 추진에 우리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북미대화를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견인하는 데는 '정상 외교'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임박한 국가별 상호관세 부과와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지정,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가능성 등 이미 대응해야 하는 사안이 산적한 가운데, 한국으로서는 '패싱'을 당하면서 비핵화 협상이 우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향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 또한 시급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hapyry@yna.co.kr, ki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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