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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말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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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맹자는 말을 아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치우친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은 무언가에 가려 있는 것이고, 지나친 말을 서슴지 않는 것은 그 마음이 어딘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리에 맞지 않는 말에서 그 사람이 보편적인 상식을 외면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빙빙 돌리는 말에서 논리가 궁색해졌음을 간파할 수 있다고 했다. 맹자는 바로 그런 말들이 결국 정치를 해치고 많은 이들의 삶을 망가뜨리게 된다는 점을 준열히 지적했다.

지난 4개월, 참으로 많은 말들을 접했다. 헌정 유린의 현장이 생중계될 때만 해도 충격과 우려로 인해 말의 편차가 그리 크지 않았는데, 법의 외피를 입은 궤변과 정치적 의도가 담긴 선동이 장시간 더해지면서 밑도 끝도 없는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둘로 갈린 진영을 균등하게 비춰주어야 옳다는 잘못된 프레임 역시, 온갖 말들의 양산에 기여했다.

말의 품격이 꼭 내용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각자의 정치적 소견을 밝히는 말에 애초부터 시비가 명확히 갈리는 것도 아니다. 치우치고 지나쳐서 참으로 무람없는 말들이 탄핵 찬반을 막론하고 넘쳐났다. 다만 품격 높은 말의 경우, 탄핵을 촉구하는 측에서는 적지 않게 나왔지만 계엄을 정당화하고 탄핵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보지 못했다. 필자의 선입견 탓도 있겠지만 아무리 귀를 열고 들어보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의 이익에 가려지거나 조작된 낭설에 빠져들어서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나오는 궁색한 말들이기에 그렇게도 거칠고 비루해질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다.

만시지탄이긴 하지만 이제 탄핵소추 선고기일이 지정되었으니 이 심란한 말들의 범람이 조금은 수그러들까? 당분간은 승복하지 못하는 측의 말이 오히려 더 쏟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없이 지연되는 것처럼 비치던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싸고 나온 그 많은 억측들만큼은 잠잠해질 것이다. 그리고 헌재의 판결문이야말로 두루 고려하고 온당한 선을 유지하며 상식을 중시하고 핵심을 논파하는, 품격 있는 말로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거기서 다시, 무너진 곳을 세우고 상처받은 이들을 보듬는 진정한 정치가 자라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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