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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미술의 세계

[일사일언] K미술 새 주역 ‘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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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는 이미 끝난 거 아니에요?”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관 이래 처음 대규모 서예전을 한다고 했을 때, 현대 미술계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다. 그렇다. 문자, 특히 한자에 기반한 예술인 서예는 이젠 아는 사람만 누리는 문화가 되어버린 듯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준비했던 서예전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온라인으로 개최한 첫 전시가 됐다. 그런데 이것이 전화위복이 될 줄이야. 전혀 교류가 없던 대만 타오위안 시립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온라인 전시 영상을 보고 우리 미술관에 전화를 걸었다. 타오위안 시립미술관에 온 한국인 유학생을 붙잡고 이 영상에 나온 사람의 연락처를 알아봐 달라고 했단다. 그렇게 시작된 순회전은 지난해 7월 타오위안 시립미술관 전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대만 측에서 전시 예산 90% 이상을 부담하고, 대만 관람객 13만명 이상이 한국 근현대 서예를 보러 다녀갔으니 우리 입장에선 그야말로 전시를 수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붓글씨를 우리는 ‘서예(書藝)’라 하지만 중국은 ‘서법(書法)’, 일본은 ‘서도(書道)’라 부른다. 동아시아 삼국이 지향하는 예술 정신이 각각 반영된 단어다. 이처럼 서예는 중국, 일본과 다른 한국만의 문화적 특성을 설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해방 이후 ‘서도’ 대신 ‘서예’로 부를 것을 주장한 이는 소전 손재형(1903~1981). 그는 문자 예술이 점점 설 자리를 잃던 시대에 서예가 나아갈 비전과 ‘미술관에서 서(書)’를 감상해야 할 당위성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미술 감상의 기초는 획(stroke)에 대한 눈썰미를 기르는 것부터다. 이를 훈련하려면 서예 감상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한문 서예를 읽지 못하는 이가 절대다수가 된 현실이다. 이제 서예가들에게는 그들의 작품이 어떻게 회화성을 획득할 것인가에 대한 과제가 던져진 셈이다.

몇 달 만에 대만에서 반가운 연락이 왔다. 올해 9월 개최되는 ‘Her Brush and Her Story’란 전시에 지난해 대만 순회전에 작품을 출품했던 김혜련과 더불어 서예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한국 여성 작가 몇 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결국 한국 여성 작가 3명이 전시 라인업에 포함됐다. 이제 서예는 미술 한류를 이끌어 나가는 새로운 주역이다. 서예는 끝나지 않았다.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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