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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법 없이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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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법 없이도 산다'는 표현이 있다. 보통 바르고 착한, 그래서 '법에 걸릴 일이 없는' 정직한 삶의 태도를 가리킨다. 정직함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는 바르고 곧은 특성'이다. 마음이 바르다는 것은 내적인 특성이지만 스스로에게 정직하려다 보면 외적인 행동도 바르기 마련이다. CCTV가 없어도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 않는다거나 누가 보고 있지 않아도 교통법규를 지키며 안전운전을 한다. 남을 속이지 않지만 그것은 '기망행위'가 처벌대상이라서가 아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을 속이지 않는 것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정직한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행위는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에 목적을 두지 않고 자아에 합치되기 때문에 거기에는 어떤 이면도 없다. 영어로 정직(integrity)이라는 말이 솔직함(honesty) 진실성(truthfulness)뿐 아니라 통일성(unity)의 뜻도 갖는 이유다.

요즘 같은 경쟁사회에서 정직한 사람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아 보인다. 유연하지 못하고 고지식하다고 비웃음을 사거나 어떤 경우에는 위선적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신념이지만 그에 맞는 행동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정직함인데, 존재하지 않는 이면을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혹시라도 바른 말과 정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욕하려면 우선 본인 마음속의 부정적인 감정부터 되돌아볼 일이다.

정직은 개인 차원의 덕목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부조리한 현실과 싸우는 사람들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을 규범적 사고에 갇힌 보수주의자나 현실에 안주하는 순응주의자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법을 신봉하지 않을 뿐 아니라 법을 무시할 수 있는 삶이란 주체적인 개인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위계 없는 사회를 그려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사뭇 큰 의미가 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관료주의의 위력과 법의 힘 앞에서 구원받지 못하고 소멸하는 개인들을 그려내곤 했다. 예를 들어 그의 '법 앞에서'에는 열리지 않는 법의 문 앞에서 평생을 기다리기만 하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결국 아무 보람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사내는 문지기에게 문득 떠오른 질문을 던진다. 법을 필요로 하는 것이 자기만은 아닐 텐데 그동안 이 문을 통과하겠다고 온 사람이 왜 아무도 없었는지 말이다. 문지기는 쓰러진 남자의 귀에 대고 말한다. "이 문은 오직 그만을 위한 것이었다"고. 문지기는 남자가 죽자 문을 영영 잠가버리고 떠난다.

여기서 법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명쾌히 이해하고 싶은, 그러나 항상 우리 손에 잡히지 않는 삶의 목적이나 세상의 이치가 아닐까. 혹시나 하나의 문을 통과한다고 해도 또 다른 문에 가로막힐, 그렇게 계속 유예되는 구원 앞에 보잘것없는 삶 말이다. 인생의 여정을 함께하다 죽음과 같이 사라지는 헛된 희망이기에 그 문은 한 사람만의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정의라는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서의 위치를 벗어나 스스로 권력이 되어버린 법체계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정의(목적)보다 강력해진 적법성(수단)은 이중 삼중의 철문을 세우며 군림한다. 법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법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지고 그만큼 좌절하는 사람도 많아진다. 오늘날, 사소한 갈등에도 대화보다 고발장이 먼저 오고 가지만 우리 개인들의 권리가 더 향상된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희망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다. 거짓 없는 마음을 따라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말이다. 법의 권력에 가장 위협적인 것이 바로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다. 정치에 대한 불신까지 더해져 법의 과잉과 교착상태가 우리의 일상을 흔들고 있는 요즘, 스스로가 주인되는 삶의 실천들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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