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한국영화학회장) |
'지브리'가 소셜미디어를 점령했다. X(옛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온통 지브리가 넘쳐난다. '챗GPT-4o 이미지 생성' 모델이 공개된 뒤 벌어진 현상이다. 생성형 AI(인공지능)는 원본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로 바꾸는데 유감없는 능력을 발휘한다. 오픈AI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은 X 계정의 프로필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로 바꿨다. 그러고 나서 지브리 열풍이 불자 "GPU(그래픽처리장치)가 녹아내리고 있다"면서 "우리 팀도 자야 하니 다들 이미지 생성을 좀 자제해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생명을 존중하고 폭력에 반대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예술적 세계관과 정교한 작화 스타일은 오랜 시간 장인의 손끝에서 완성됐다. 하지만 이제 인공지능은 비슷한 스타일의 그림을 뚝딱 그려낸다. '생성의 충격'이라 부를 만하다. 이를 두고 저작권 문제, 기술의 진보, 표현의 자유, 창작의 권리, 문화적 감수성에 관한 논란이 분분하다.
당장 저작권 문제가 떠올랐다. 오픈AI가 지브리스튜디오와 계약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특정한 스타일은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아니라며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 대세인 듯하다. 그러나 챗GPT가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대규모로 학습했는지, 그 과정에서 승인을 받았는지와 같은 쟁점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저작권 위반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는 지브리스튜디오와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는 과정을 통해 그 스타일과 세계관에 경의를 표한다. 동시에 자신의 정서와 이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즐거움을 찾는다. 원본을 훼손하거나 대체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대중의 기억 속에 내재한 애정과 존경을 기술적으로 번역해내는 '디지털 헌사'라고 할 만하다.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지브리의 권위가 방증된다.
우리는 왜 '지브리처럼 보이는 것'을 즐기는가. 기억과 정서를 소환하고 공유하기 위해서다. 지브리 스타일은 특정 세대의 향수코드다. 인공지능은 그 향수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시각 언어로 바꾸어준다. 따라서 이 열풍은 단순히 창작의 윤리나 기술의 진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정서의 민주화'라는 새로운 문화적 흐름의 일부다.
이제 지브리는 더 이상 이야기의 형식이 아니라, 이미지의 문법이 됐다. 그 문법은 누구나 차용할 수 있는 밈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원본과 복제, 창작과 번역, 의미와 유희 사이의 새로운 문화적 지형을 목격하게 된다. 지브리를 그리는 인공지능은 더 이상 위협도, 감탄도 아니다. 기술복제의 시대, 창작은 해체를 거쳐 다시 번역된다. 우리는 그 속에서 무엇을 간직하고, 무엇을 흘려보낼지 물어야 한다.
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한국영화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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