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장소팔 만담’ 맥 잇는 장광팔 만담보존회장
장에 소 팔러 갔다가 나와서 장소팔
장에 광 팔러 갔다가 나와서 장광팔
선친의 뒤이어 40여년 만담가 외길
1960·70년대 가난하고 배고픈 시대
장소팔·고춘자 콤비 재담에 웃음꽃
라디오 방송시간엔 동네거리 ‘한산’
삼형제 중에서 서사 문학 관심 많아
‘장소팔 만담’ 체계적 정리·보존 결심
만담 무대라면 어느 곳이든 달려가
“우주의 기원 빅뱅 이전에는 지오디”
MZ세대 겨냥 만담 유튜브 활동도
서울문화유산 지정 등 대중화 온힘
만담은 1960∼70년대 TV가 널리 보급되지 않아 라디오를 즐겨 듣던 시절, 두 사람이 재치 있는 말로 세상을 풍자하며 국민의 웃음과 위안을 담당했던 공연의 한 장르다. 젊은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50대 이상은 추억이 새록새록할 수 있다. 당시 장소팔(본명 장세건·1922~2002)은 ‘국민 만담가’로 불리며 최고의 인기 스타였다. 그가 고춘자(1922~1995)와 찰떡 콤비로 주고받은 KBS 라디오 만담 프로그램 ‘내 강산 좋을시고’ 방송시간이면 사람들은 라디오 앞에 삼삼오오 모였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장소팔과 고춘자의 입심에 일상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렸다. 두 사람이 출연하는 전국 곳곳의 만담 공연도 매진 사례를 기록하는 등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애석하게도 만담의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TV 영향력이 커지면서 만담가들이 설 무대도 줄어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장광팔(본명 장광혁) 만담보존회장이 지난달 20일 세계일보에서 인터뷰 도중 만담 공연 장면을 설명하고 있다. ‘국민 만담가’ 장소팔의 둘째 아들로 대를 이어 40여년간 만담가의 외길을 걷고 있는 그는 “만담이 요즘 젊은 세대에겐 시시한 말장난으로 보일지라도, 한 시대의 웃음을 책임졌던 만큼 하나의 장르로 보존·계승해야 할 사명감을 갖고 있다. 만담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세대를 관통하는 웃음과 공연 형식의 개발과 구현이 주된 관심사다”라고 말했다. 최상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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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누구보다 안까깝게 여기며 대중의 기억 속에 잊혀가는 만담을 보존하고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이 있다. 장소팔의 둘째 아들 장광팔(본명 장광혁·73) 만담보존회장이다. 그는 ‘장에 소 팔러 갔다가 나왔다’는 부친의 예명(장소팔) 어원을 차용해 ‘장에 광 팔러 갔다가 나왔다’는 뜻을 담은 예명(장광팔)을 쓴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장 회장은 지난 40여년간 직접 만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과 배우로도 활동하며 만담가로서 외길을 걷고 있다. 만담을 서울시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자 발 벗고 나선 그를 지난달 20일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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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는 만담과 장소팔 선생에 대해 잘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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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담 보존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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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
“‘만담은 여유와 배려에서 나온단다’라고 늘 말씀하시면서 이웃과 주변을 잘 챙겼던 분이다. 1960년대 만담 전성기 때는 돈도 많이 버셨는데 버신 만큼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겼다. (형편이) 어려운 지인이 돈을 빌리러 온 눈치이면 집으로 불러 대접하고 하룻밤 재우셨다. 다음 날에는 동네 시장에 데려가 힘이 약한 사람에게는 짐 자전거를, 건장한 사람에게는 손수레를 사줬다. 그걸로 돈벌이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길에 돈이 널려있으니, 주워 담을 그릇만 있으면 돼!’라고 하셨다. 돌아가시면서도 ‘이제 나는 심심해서 죽는다’라고 만담 유언을 남기셨다. 뼛속까지 만담인 이었다.”
―일본과 중국에도 만담과 유사한 장르가 있다고 들었다.
1960년대 장소팔·고춘자 선생의 만담 KBS 방송 장면. 만담보존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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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담을 서울시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우리도 더 늦기 전에 만담 보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난해부터 우리의 전통 이야기 만담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뜻있는 분들과 함께 힘을 쓰고 있다. 만담이 서울시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전수자와 이수자를 둘 수 있고 체계적으로 후계자를 양성할 수 있다. 지금은 몇몇이 배우겠다고 찾아와도 조금 가르쳐 놓으면 개그맨으로 가버린다. 만담은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만담이 쉬운 것도 아니다. 코미디는 방송작가가 있는데 만담은 작가가 없다. 직접 기승전결이 있는 대본을 써야 하는 등 연기 못지않게 글재주도 있어야 한다.”
―만담의 보존·계승을 위한 그간의 활동은.
―젊은 세대를 겨냥한 만담 유튜브 활동도 하고 있다고.
“만담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세대를 관통하는 웃음과 공연형식의 개발과 구현에 힘을 쏟고 있다. MZ세대가 선호하는 유튜브 쇼츠 제작도 그 일환이다. 찰리 채플린을 ‘차라리 재뿌린’으로 변용한 쇼츠 타이틀을 ‘차라리 재뿌린의’ <만담이 인문학에 농을 건네다>로 매주 1회씩 올리고 있는데, 젊은층의 반응이 좋다. 예컨대, 우주의 기원 빅뱅이론에 관해 설명하다가 만담 퀴즈로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묻는 식이다. 정답은? “빅뱅 이전에는 ‘지오디’가 있었습니다” 하고 만담으로 허를 찌르며 마무리한다. ‘추기경 편’에서는 추기경 선출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김수환 추기경님께 몇 개 국어를 하시는지 묻는다.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면 추기경님 답변은? “두 가지 말을 합니다. 주로 사실대로 이야기하다가 가끔 거짓말도 섞어서 합니다”라고 하면 폭소가 터진다. 현재 38편을 올렸는데, 젊은층도 재미있어 해 계속할 생각이다.”
장광팔 회장의 만담극 ‘리어커를 탄 리어왕’ 출연 장면. 만담보존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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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계획은.
장광팔 만담보존회장은… ●1952년 서울 출생 ●경기중, 동성고, 단국대 법학과 졸업 ●진주교육대 교육대학원 ‘장소팔만담연구’논문 석사 ●만담보존회장 ●장소팔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전기수협회장 ●정해복지법인 상임고문 ●‘팔도강산 유람’ ‘소문만목래’ 등 만담 공연 1500여회 ●‘소통의 유머 리더십’ ‘Story를 입혀라’ ‘일반상식 3시간에 꿰뚫기’ ‘짜증과 맞짱뜨기: 20초에 사로잡아라’ 등 저서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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