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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목)

공정위 플랫폼 규제법 '美무역장벽' 직격… 꺾이는 입법 동력에 후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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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TR 'NTE 보고서' 경쟁정책 지적
"美기업 다수 적용, 韓기업은 두 곳"
상호관세 빌미 될라…커지는 신중론
"현행법 집행 내실화부터" 현실론도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1일 '국별 무역장벽보고서(NTE)'를 발표했다. USTR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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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과점 플랫폼을 겨냥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정거래법 개정안1 입법 시도가 업계 반발, 여야 이견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압박까지 더해져 추진 동력이 꺾이는 양상이다. 개정안이 아직 논의 단계임에도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국별 무역장벽보고서(NTE)에 관련 내용을 적시하면서 전략적 후퇴 여부를 두고 경쟁당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2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공정위는 전날 USTR의 '2025년 NTE 보고서'에 언급된 경쟁정책 부분 대응을 두고 부심하고 있다. NTE 보고서는 향후 관세 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 근거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는 빅테크 기업의 반경쟁행위 제재를 위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관점엔 변함이 없으나, 미국 정부가 제재 규정을 '비관세장벽'으로 규정하고 이를 관세 부과 빌미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우리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실제 NTE 보고서엔 "지난해 한국 정부는 공정위와 국회를 포함해 글로벌, 국내 매출 기준을 충족하는 특정 디지털 서비스 공급자에 대한 규제 방안을 검토했다"며 "규제안은 한국 시장에서 활동 중인 다수의 미국 대기업에 적용될 수 있다"고 명시됐다. 그러면서 "규제법안 제재 대상이 한국 대기업 두 곳(네이버, 카카오)엔 적용되는 것으로 보이나, 다른 한국기업이나 (중국 등) 타국 기업은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규제안엔 시장 내 경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에 사전적 금지 사항과 의무를 부과하는 여러 조항이 포함돼 있다"며 "미국은 한국이 소통을 개선하고 투명성을 제고하고, 이해관계자에 실질적 의견 개진 기회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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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네이버·카카오 외 미국 기업을 저격한 차별적 제재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공정위는 "국적 관계없이 같은 원칙, 기준이 적용된다"고 설명해왔으나, 이를 떠나 해당 문제에 관한 미국 정부 입장을 또렷이 드러낸 셈이라 우리 정부로선 적지 않은 부담이다. 최근 공정위와 통상·외교 관계 부처 간 논의 과정에서도 속도 조절 등 신중론이 언급된 것으로 전해진다.

NTE 보고서 발표 이후 공정위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다만 한 정부 관계자는 "전체적인 국가 통상 전략 차원에서 논의돼야 하는 사안이 됐다"고 말했다. 올해 2월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미국과 통상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탄력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매우 크다"며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 국익에 손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기류 변화를 내비쳤다.

독과점 플랫폼 규제 입법이 잠정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구체적인 법안 수위를 두고 공청회를 열며 다투던 국회에서도 논의가 자취를 감췄다. 앞서 야당은 사전지정을 포함한 보다 강도 높은 '온라인플랫폼법' 관련 법안만 18개를 발의한 데다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을 거론하기도 했으나 통상 부담이 커지자 자제하는 모양새다.

현행법 집행 내실화를 우선해야 한다는 현실론도 나온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럽연합(EU)의 구글·애플 관련 디지털시장법(DMA) 집행에 미국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추이를 지켜보며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플랫폼 독과점화 속도에 비해 그간 해외 기업 제재가 인적·물적 한계로 필요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며 "공정위 집행 역량을 강화해 관련 대응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 공정거래법 개정안
중개·검색엔진·사회관계망서비스(SNS)·동영상·운영체제·광고 등 6개 분야에서 시장 영향력이 압도적인 지배적 플랫폼의 '4대 반경쟁행위'(자사 우대·끼워팔기·멀티호밍 제한·최혜대우 요구) 금지가 골자로, 적발 시 과징금은 현행법 상한인 관련 매출액의 6%보다 높은 8%를 적용한다.


세종=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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