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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기술자에게 듣는다]⑦SK케미칼 연구소장 "새로운 페트 생산하지 않는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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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석 SK케미칼 연구소장 인터뷰

해중합으로 플라스틱 무한 재활용 시대 열어

"기술 기반 고부가 전략 먹혔다…R&D 집중"

편집자주한국 산업이 총체적 위기에 놓였다. 원자재 가격 급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미·중 무역 갈등이 겹쳐 경영 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런 위기를 돌파할 열쇠는 결국 기술이다. 기술은 기업의 생명줄이자 존재 가치다. 기업들이 최고기술책임자(CTO)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CTO들은 단순히 신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하는 시장을 분석해 기업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전략가로 자리매김했다. 아시아경제는 국내 주요 기업의 CTO들을 만나 각 산업이 주목하는 핵심 기술과 차별화 전략을 들어봤다. 주요 기업의 기술 전략을 통해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 가치를 창출할 방안을 모색한다.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페트를 생산하지 않는 미래를 꿈꾼다."
SK케미칼 연구개발(R&D)을 총괄하는 김한석 연구소장이 최근 경기 성남 SK케미칼 본사에서 진행한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강조한 말이다. 페트는 SK케미칼이 생산하는 플라스틱 소재로, 환경친화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제품 생산 초기부터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소재를 설계하고 원래의 물성으로 되돌리는 기술을 개발해 플라스틱 순환 체계를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SK케미칼은 코폴리에스터와 같은 고부가가치 친환경 소재 사업에 집중하는데, 2021년에는 세계 최초로 ‘해중합(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활용한 코폴리에스터를 상용화하기도 했다. 친환경 소재에서 초(超)격차를 유지하겠다는 게 김 소장의 야심이다. 그는 1994년 폴리에스터 원료 연구 담당자로 입사했고 2020년부터 연구소장직을 맡고 있다.

김한석 SK케미칼 연구소장이 지난달 19일 경기 성남 SK케미칼 본사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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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중합 기술, 무한 재활용 시대 여는 핵심

SK케미칼이 ‘초격차’를 만들기 위해 집중하는 분야는 해중합 기술이다. 일반적인 기계적 재활용은 반복 시 물성이 떨어지지만 해중합은 플라스틱을 원료 수준까지 분해한다. 이 기술은 이론상 한 번 생산된 페트를 무한히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위해 중국의 슈에 사 해중합 공장을 인수해 상업화 체제를 마련했다. 국내 파일럿 플랜트인 ‘리사이클링 이노베이션 센터(RIC)’도 2026년 초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김 소장은 "SK케미칼은 해중합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며 "화학적 재활용은 제품을 ‘분자 단위’로 되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석유 기반 플라스틱과 거의 동등한 품질을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완결적 순환 체계(클로즈드 루프 솔루션) 구축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기술로 손꼽힌다"며 "해중합 기술로 페트를 r-BHET라는 원료로 되돌아가게 하고, 이 원료로 다시 페트나 코폴리에스터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중합 기술을 적용하면 기존에는 재활용이 어려웠던 유색 플라스틱이나 섬유 등도 재활용이 가능해진다"며 "한 번 재활용된 페트나 코폴리에스터를 여러 번 다시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SK케미칼은 '2024 국제 비즈니스 대상(IBA)'에서 'SK케미칼 클로즈드 루프 솔루션' 영상이 영상 부문 금상을 받았다고 25일 밝혔다. 사진은 'SK케미칼 클로즈드 루프 솔루션' 영상 스틸컷.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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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효자' 코폴리에스터 개발도
SK케미칼은 스페셜티로 분류되는 코폴리에스터 포트폴리오도 다각화할 계획이다. 지난해 석유화학 업계 침체 속에서도 역대 최대 실적을 이끈 사업 부문이다. SK케미칼은 지난해 코폴리에스터 호조 덕에 2017년 사업 부문 분사 후 최대 실적인 영업이익 1111억원을 기록했다.

김 소장은 "코폴리에스터 PETG는 기존 PET로 만들기 어려운 투명하고 두꺼운 시트나 용기를 만들 수 있다"며 "투명성과 내화학성이 뛰어나 고급 화장품 용기, 건축자재, 가전 부품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환경호르몬인 비스페놀-A를 함유하지 않고 소각·폐기할 때도 유해 물질이 발생하지 않아서 2000년대 초반 개발에 힘을 쏟았다"고 했다.

일부 소비재 기업들과 재활용 용기를 공급하기 위한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김 소장은 "재활용 원료로 만든 코폴리에스터로 생수병, 식품 용기, 주류 병 등에 적용하기 위한 협업을 진행중"이라면서 "향후엔 자동차나 패션 등 각 산업군에서 필요로 하는 솔루션을 구현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쟁사가 원가 낮출 때 우린 R&D 집중"

김한석 SK케미칼 연구소장이 지난달 19일 경기 성남 SK케미칼 본사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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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공급 과잉에 따른 저가경쟁에 국내 기업들이 맥을 못추고 있다. 김 소장은 "SK케미칼은 ‘범용 제품은 대량 생산 중심 국가에 맡기고 우리는 기술 기반 고부가소재로 간다’는 전략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섬유·보틀용 칩 등 PET 생산하던 때에도 중국이 쫓아왔었다"며 "당시 많은 회사는 원가 경쟁력에 집중할 때 우린 R&D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협력 업체를 적기에 잘 찾아내는 역량도 발휘됐다. 2001년 PETG 상업화 당시에는 오랜 우호 관계를 유지해온 유럽 협력사로부터 촉매 도입에 필요한 지원을 받았고, 파일럿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일본 NJC사를 발굴해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2021년 해중합 사업에 진출할 때는 이미 관련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 기업과 손잡고 사업을 전개했다.

그는 R&D 인재 양성을 위한 독특한 사내 문화도 소개했다. 김 소장은 "연구 프로젝트의 인력을 구성할 때 성과뿐 아니라 각자의 경력 개발도 함께 고려한다"고 말했다. 이어 "궁극적으로 각 연구원들이 맡은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덧붙였다. 금요일 오후에는 자기 계발을 위한 자율 활동 시간 3시간을 제공하고, 사내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행사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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