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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못한 슬픔’ 75년 만에…손자의 ‘피’로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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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7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에서 고 김희숙씨의 유족인 손자 김경현씨와 김씨의 딸 해나양이 사연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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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77주년, 제주 4·3의 비극이 일어난 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행방불명된 가족의 유해를 찾는 일은 끝나지 않았다.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7주년 4·3희생자추념식에서는 4·3 당시 행방불명됐다가 발굴 유해 유전자 감식을 통해 75년 만에 신원이 확인돼 가족 품으로 돌아간 고 김희숙씨와 유족의 사연이 소개됐다.



김희숙씨의 아들 김광익씨는 이날 공개된 영상에서 아버지 유해를 모신 유골단지 앞에서 “아버지… 아들 왔어요”라고 울먹였다. 그의 울음소리 위로 ‘75년 만에 아버지를 만났습니다’라는 자막이 지나갔다. 그는 “나같이 부모 못 찾은 사람들은 피검사라도 하고 꼭 찾아보세요. 못 찾았으면 죽어서도 제대로 눈을 못 감을 겁니다”라고 당부했다.



가족들은 김희숙씨가 29살이었던 1950년 한국전쟁 후 예비검속으로 잡혀가 섯알오름으로 희생된 것으로 알고 지냈다. 겨우 4살에 아버지와 헤어진 김광익씨는 그 근처에 아버지가 묻혔으리라 생각하고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섯알오름을 찾았다. 유해라도 찾고 싶었던 아들은 평생 섯알오름 근처를 헤맸다. 그러나 유해는 섯알오름 쪽이 아니라 제주공항에서 발굴됐다.



제77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을 찾은 유족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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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광익씨를 대신해 김희숙씨의 손자 김경현씨와 증손녀 해나 양이 함께 추념식 무대에 올라 채혈로 유해를 찾은 과정을 설명했다.



김경현씨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사진으로도 뵌 적이 없다. 할아버지가 행방불명된 후 고향 마을에 살 수 없었던 아버지는 이사를 많이 다니면서 사진들도 모두 잃어버렸다"며 고달팠던 가족의 삶을 전했다. 이어 “혹시나 할아버지 유해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여름 제가 나서서 유가족 채혈을 했다”며 “며칠 뒤 저랑 어느 정도 디엔에이(DNA)가 일치하는 분이 있다는 연락이 와서 아버지와 고모, 형님도 디엔에이 검사를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채혈 한 번의 결과로 할아버지의 유해를 찾았다”며 “섯알오름에서 돌아가셨을 거라고 생각했던 할아버지가 제주공항에 묻혀 계셨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유해를 잘 모셔서 장례를 치르고 싶어 한다”고 덧붙였다.



해나 양도 “한강 작가님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작별할 수 없는 아픔을 이야기했는데, 우리 가족은 이제 오랜 아픔과 작별하고 증조할아버지를 잘 보내드릴 수 있게 됐다”며 “할아버지가 힘들었던 시간은 뒤로 하고 남은 인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경현씨는 “아버지, 아버지께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셨을 때 외치셨던 그 말, 저도 아버지께 외쳐 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추모사를 마무리했다.



이들의 발표가 끝나자 추념식장에 앉은 이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현재까지 4·3 당시 행방불명된 희생자 유해 419구가 발굴됐으나,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사례는 147명뿐이라고 4·3 평화재단은 밝혔다. 제주도는 4·3 행방불명 희생자 신원확인을 위해 유전자 정보 확보를 위한 유족 채혈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날 추념식장에도 희생자 유가족 채혈 부스 2곳이 운영됐다. 평소에도 신분증을 갖고 평일 오후 1~4시 제주한라병원(신관 3층) 또는 평일 오전 9시~오후 5시 서귀포열린병원(2층)을 방문하면 채혈할 수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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