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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러 국회로 간 마음들 [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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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해 12월 4일 새벽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의결된 직후의 국회 본청. 박시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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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의 밤에 국회의장실 원은설(29) 정무비서관은 심장이 터지도록 국회 본청을 뛰어다녔다. 지하부터 7층까지, 사무실 전등 수백 개를 죄다 켜는 게 그의 임무였다. 50년 된 건물이라 전등을 한꺼번에 켜는 설비가 없어 일일이 손으로 스위치를 눌러야 했다. 마스터키로 잠긴 문을 열기 전에 “불 켜러 왔다”고 소리부터 질렀다. 계엄군인 줄 알고 놀랄까 봐 걱정돼서였다. 마지막 불을 켜고서야 손톱이 들리고 깨져서 피가 나는 걸 알았다.

□ 그날 자정 지나 촬영한 사진 속 국회가 어둠을 불사를 기세로 빛나는 이유다. 그저 보기 좋으라고 켠 불은 아니다. 비상계엄해제 결의안 처리가 우원식 국회의장 손에 달려 있었다. 숨어 있던 사무실이 계엄군에게 노출되면 큰일이었다. 그래서 전부 불을 켜서 위장하기로 했다. 계엄군은 야간 투시경을 끼고 들어올 텐데, 국회 직원들만 시야가 어두워서도 안 됐다. “빛으로 계엄군 눈을 가린 것"이었다고 원 비서관은 말했다. 환한 불빛은 국회를 지키러 나온 시민들을 안심시켰다. 민주주의가 꺼지지 않았다고 마음을 놓았다.

□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세운 재단법인 진실의힘은 그날 국회 앞에 있었던 시민들의 육성 증언을 모으고 있다. 270명이 인터뷰를 약속했다. ‘시신으로 발견됐을 때 신원 확인이 안 될까 봐 신분증을 지니고 나왔다, 엄마 죽는다고 딸이 가로막았지만 나왔다, 살 만큼 산 내가 나서야지 젊은 애들 앞세우면 안 되겠다 싶었다, 총에 맞아 누가 다치면 국회 앞 우리 집으로 옮기려고 했다···’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발걸음이 유언 같은 밤이었다”고 송소연 진실의힘 상임이사는 말했다.

□ 저마다 각자 자리에서 불법계엄을 막았다. 누군가는 맨몸으로 장갑차를 저지하고, 누군가는 무작정 광화문으로 내달렸다. 기자들도 다급한 밤을 보냈다. 계엄군이 편집국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며칠치 속옷, 라면, 휴대용 가스버너를 들고 회사로 달려간 기자, 계엄군이 들이닥치면 준엄하게 꾸짖겠다며 정장을 챙겨 입고 간 기자, 딸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는 기자··· 헌법재판소가 그 밤의 간절한 마음들에 응답하기 바란다.

최문선 논설위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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