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보다 잔인한 달, 4월에 접어들었다. 어떤 일마다 그 어떤 놈이 끼어드는 날들의 연속이다. 발목에 겨우 찰랑대는 내 철학의 수준. 그걸 좀 높이려 하이데거 강의 듣다가 오래전의 영화 한 편으로 연결되었다. <한나 아렌트>, 독일계 유대인 정치철학자 아렌트(1906~1975)의 삶을 다룬 영화다. 뉴요커지의 요청으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방청하고 리포트를 작성한 아렌트는 유대 지도자들의 책임도 정확하게 지적한 탓에 엄청난 비난을 받는다. 중단하라는 압력 속에 진행된 아렌트의 꿋꿋한 강의. 어라, 오늘 우리 시대가 새겨들을 말이 아닌가. 조금 길게 중계해본다.
“법정에 세운 아이히만의 범죄는 법률책에 나와 있지도 않았고 뉘른베르크 재판 이전에 알려지지도 않았던 범죄였어요. 그래도 법정은 아이히만의 행위를 규정해야 했어요. 재판의 체계도 없었고 역사와 이즘, 반유대주의도 없이 한 인물뿐이었어요. (…) 자신이 주도한 건 아무것도 없고 선이든 악이든 의도가 없었으며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고 했어요. 평범한 사람이 저지른 악, 동기도 없이 행해진 악, 신념도 악의도 악마의 의지도 없었어요. 사람이기를 거부한 인간의 행위였어요. 저는 이 현상을 악의 평범성이라 이름 붙였어요.”
국회를 습격하는 장면을 들키고도 뻔뻔하게 발뺌하는 내란범, 위임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헌법 위반을 버젓이 자행하는 대행들, 입만 열면 법과 원칙을 비타민처럼 복용하는 법꾸라지들. 이런 초유의 행태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 이들이 다시 그날로 간다면 또 그런 결정을 할 것이라는 ‘평범한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이어지는 아렌트의 말.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이래 생각이란 이런 것이었어요. 나 자신과의 조용한 대화. (…) 생각이라는 바람을 표명하는 건 지식의 돛이 아니라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말할 능력이에요. 내가 바라는 건 사람들이 생각의 힘으로 예기치 않은 일이 닥칠 때 파국을 막는 거예요.”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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