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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어떤 결정이 나든 법치와 민주주의는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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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심판 선고기일이 4일로 정해졌다. 결과를 예단할 수 없지만, 어떤 결정이 나든 나라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위기에 빠질 것은 예상할 수 있다. 이 정부에서 이미 훼손돼 ‘불완전한 민주주의국가’라는 진단이지만,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다. 탄핵이 인용되면 일단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으로 짓밟힌 헌정질서는 회복된다. 그러나 탄핵 반대파에 의한 헌재 결정 불복, 사법 체계 부정, 재판관에 대한 협박과 테러 등 헌정 파괴가 뒤따를 것이다. 정치인, 종교 지도자가 최고 사법기관인 헌재와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공격을 부추기기도 했다.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각 결정이 나면 명백하게 위헌·위법을 자행한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하게 되고, 유린당한 헌정질서는 그대로 남게 된다. 헌법 수호의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면죄부를 받는 꼴이다. 대통령의 지위에서 내란죄 피고인으로 형사재판을 받아야 하지만, 검찰이 공소 유지를 제대로 할 것인지, 재판이 공정하고 신속하게 진행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의회의사당 난입 폭도들을 사면한 것이나, 자신에 대한 기소 모두 법무부가 취소한 것이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닐 수 있다. 어쨌든 법치주의의 훼손은 우려할 만한 상황이 될 것이다.

어떤 결정이 나든, 지금까지도 헌재 결정을 뭉개고 있는 대통령 권한대행들은 무사할 것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은 민주적 절차를 거쳐 내려진 법적 판단으로 존중해야 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탄핵 기각 결정으로 직무에 복귀한 직후 한 말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헌재가 결정한 9인 체제 복구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헌법재판관 미임명 권한쟁의심판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국가기관의 장으로서 헌법에 따라 부여된 국회의 재판관 선출을 통한 헌재 구성권 침해 상태를 방치하고 있다.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헌재와 사법부 판단에 대한 존중은 지극히 당연한데, 그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을 준수하고 헌재 결정을 존중해야 할 공직자다. 헌법재판소법 제67조에 따라 헌재의 권한쟁의심판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과 지자체를 기속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재판관 미임명의 위헌·위법 상태를 제거하고, 합헌·합법 상태로 회복시킬 작위 의무를 다해야 한다. 대통령과 집권당,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미룰 일이 아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미임명한 재판관 후보자가 탄핵심판에서 캐스팅보트를 쥐는 상황이라면 헌재 결정의 정당성은 두고두고 시빗거리가 될 것이다. 그 책임은 법치국가의 오점을 남긴 대통령 권한대행들에게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들이 헌재 결정에 따르지 않는 것은 헌법을 실현하는 헌법재판 제도와 헌법 질서를 유지·수호하는 국가 작용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직자로서 사법 체계 존중과 사법적 판단 승복은 당연하고, 상식이다. 입법에 근거해 행정을 펼치고, 이를 위반하면 사법기관이 시시비비를 가리고, 국가기관이 이를 따르고 존중하는 것이 법치국가 원리다. 국가 지도자와 공직자가 사법기관의 판단을 자기 맘대로 재단해 따르고 싶은 것만 따른다면 권력분립은 무력화된다. 국민 각자가 판관이 되어 내가 곧 정의라고 외치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인 야만 국가가 된다.

수없는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면서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법원 판결을 유불리에 따라 승복하지 않는 대통령, 정치인, 종교 지도자, 법조인 등의 목소리가 커지면 나라의 법치와 민주주의는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빠진다. 대한민국이 ‘불완전한 민주주의’의 오명을 씻어내고 완전한 법치국가, 민주주의국가로 나아갈 것인지는 헌재 탄핵 결정의 정당성과 신뢰성, 그리고 이를 대하는 피청구인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 정치권의 태도에 달려 있다.

경향신문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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