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사회에서 차별받던 그들
우연히 탈출 같은 짧은 휴가 나서
아무 힘도 없다고 생각한 두 사람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힘이 생겨
안톤 체호프의 잘 알려진, “달이 빛난다고 말해주지 말고, 깨진 유리 조각에 반짝이는 한 줄기 빛을 보여줘라”라는 말은 묘사와 관련돼 있다. 묘사가 없다면 인물이든 배경이든 책장을 넘길 때 독자의 눈에 생생하고 살아 있는 듯 느껴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문장 솜씨만큼이나 대상에 대한 작가의 집요한 관찰과 시선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숲과 강 같은 자연 묘사를 거기서 정말 살아본 듯 필요한 만큼 세세히 쓴 작가의 글을 읽을 때면 부럽고 배우고 싶어진다. 캐서린 앤 포터의 단편 ‘휴가’를 펼친다면 연필 한 자루가 필요해질지 모른다. 봄이 오는 농경지대와 숲, 거기에 인물의 감정까지 담아 묘사한 문장들에 밑줄을 긋고 싶어져서.
조경란 소설가 |
내가 한동안 머물게 된 휴가지의 숙소는 옛날식으로 사는 독일인 농부의 집 다락방이었다. 숙박비가 비싸지 않으면서도 아늑한 곳. 가부장적인 이 집엔 뮐러가의 열 명도 넘는 대가족이 함께 살고 있으며 하루 세 번 식사 때마다 혼자서 떡 벌어지게 상을 차려내는 하녀도 있는데, 이상하지만 내 눈에 하녀가 계속 들어왔고 식탁에 앉을 때마다 그 거친 손과 음식들이 그녀의 노동을 상징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다. 하녀는 말도 못하는 데다 몸이 애처롭고 기이한 형태로 뒤틀어져 있었다. 하녀에게 누구도 말을 걸지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고립 때문인지 집에서 그녀만이 “유일한 개인”으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보였다.
오솔길과 강으로 이어지는 샛길을 산책하며 나는 여기를 떠나올 때와 달리 아픈 응어리들이 차츰 풀려가며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걸 느꼈다. 자연의 들숨과 날숨 속에서, 식물들의 뿌리로 점점 더 단단해져 가는 발밑의 흙에서, 골짜기가 금록색으로 변하는 느리고 미묘한 봄의 징조들을 보면서. 하루는 산책하러 가는데 뒷문 포치 계단에서 감자 껍질을 벗기고 있던 하녀 오틸리가 내 옷소매를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할 말이 있는 눈으로. 창고 같은 그녀 방에서 나는 사진 한 장을 보았다. 다섯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프릴 달린 원피스를 입고 웃고 있는 사진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단단한 공동체에서도 외면당하고 있는 오틸리가 하녀가 아니라 이 가부장적인 집안의 큰딸이라는 사실을.
서두에 좀 길게 보여준다 싶었던 낡은 마차와 조랑말이 결말에 다시 쓰인다. 각자의 집에서,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서 차별받는 타자들이었던 두 여성은 손에 고삐를 잡고 우스꽝스럽게 비틀거리며 장례 행렬을 따라 나아갔다. 그렇게 나의 휴가는 변주된다. 처음엔 나 자신만을 위한 휴가였다가 오늘만은 오틸리와 함께 하는 휴가로. “햇볕의 열기, 환한 공기, 공작빛 녹색으로 물든 하늘. 이것들 중에서 무언가가 그녀에게 가 닿은 것 같았”고 오틸리는 울음 같은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그들은 장례식에 갔던 가족이 돌아오기 전까지 내가 잘 아는 오솔길을 통해 집으로 먼저 돌아와 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그 탈출 같은 짧은 휴가를 응원하는 마음이 독자에게도 눈물처럼 솟구치며 동시에 내 힘이 미치지 않는 거리에 있지만, 그 거리를 부정하고 다리를 놓고 싶은, 놓아야 하는 타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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