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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체불임금 노동청 진정 사건을 8개월째 끌고 있습니다. 근로감독관은 사용자의 해외 체류를 핑계로 조사를 두 달 미뤘고요. 감독관이 피해자 관점에서 배려하기보다는 그냥 형식적 조사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웬만하면 ‘합의 종결’로 끝나길 바라는 안일함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검사에게 올리는 의견서 내용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2025년 3월, 닉네임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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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임금체불을 진정한 지 8개월이 지났다니 황당하네요. 고용노동부 누리집에 명시된 사건 처리 기간은 25일이에요. 근로감독관 직권으로 1차(25일) 연장할 수 있고, 진정인의 동의를 얻으면 2차(25일) 연장됩니다. 늦어도 사건을 진정한 날부터 75일 안에 조사를 끝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8개월이라니요.
근로감독관은 사장이 해외에 있든 우주에 있든 연락이 안 되면 진정인의 증빙자료를 토대로 조사하고,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하면 됩니다. 직원 임금 떼먹고 해외에서 놀고 있다면 악질 중의 악질이니, 검찰이 최대 징역 3년 형을 구형해야겠죠. 조사 기간 최장 75일, 검찰 사건 송치 2개월까지 아무리 오래 걸려도 4개월인데 8개월째라니, 체불임금 피해자를 말려 죽일 심산인가요?
근로감독관의 직무 유기나 소극 행정은 국민신문고에 신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국민권익위원회에서 해당 노동청에 사건을 전달합니다. 심각한 경우 감독관을 교체하기도 하는데 보통은 “해당 부서장에게 보고했고, 부서장은 담당 감독관을 면담해 동일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 조치하였고, 서로 간에 신뢰받을 수 있도록 엄정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직무에 임할 것을 당부했다”는 하나 마나 한 답변을 보내기도 합니다.
해당 노동청에 근로감독관 변경을 요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데 감독관이 바뀌어도 ‘가재는 게 편’인 경우가 많고요. 바뀌지 않으면 담당 감독관에게 밉보이게 되니, 진정인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환장할 노릇이죠. 전 세계가 생방송으로 목격한 12.3 내란, 국회가 탄핵 소추한 날로부터 111일을 뭉갠 헌법재판소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던 우리 국민처럼 말입니다.
지난해 임금체불액이 사상 최대인 2조448억원을 기록한 나라. 임금체불은 합의만 하면 처벌받지 않아서(반의사불벌죄), 임금을 떼먹을수록 사장에게 유리한 세상. 사장을 처벌받게 하고 싶어도 체불임금을 받으려면 기나긴 민사소송을 해야 하는 사회. 공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할 근로감독관이 사장 편을 들거나 합의를 종용하는 국가. 그래서 ‘목구멍이 포도청’인 가난한 직장인들이 떼인 월급 일부를 포기하고 합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 독일 등 선진국들은 임금 ‘체불’(마땅히 지급해야 할 것은 지급하지 못하고 미룸)이 아니라 임금 ‘절도’(wage theft)라고 불러요. 명백한 범죄이자 인권침해라는 뜻이죠. 근로기준법 43조의 체불을 모두 절도로 바꾸고, 도둑질한 임금을 돌려줘도 처벌하고, 현행 3년인 임금채권 소멸시효를 없애면 임금 ‘절도범’들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이리 쉬운 걸 왜 안 하고 있는지.
55년 전 평화시장 여공들의 노동실태를 진정했던 전태일을 문전박대한 근로감독관과 오늘 ‘정의’님을 대하는 근로감독관은 얼마나 다른가요? 사장에게 괴롭힘을 당해 마지막 기댈 곳으로 신고했는데 공무원에게 갑질을 당했을 때의 설움은 표현하기조차 힘듭니다. 물론 ‘진상’ 진정인에 시달리는 근로감독관의 고충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판관에 대한 약자의 기대가 무너질 때 세상을 살아갈 힘이 있을까요? 그나저나 깨져버린 헌법재판소에 대한 신뢰는 어찌해야 할까요?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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