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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한국 민주주의 회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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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에 왕(王)자를 그리고, 하늘을 향해 어퍼컷을 날리며 대통령 선거전을 치른 검사 출신 윤석열은 집권 이후 설득과 통합 대신 무속과 갈라치기로 국정을 운영했다. 노조를 “건폭”, 과학계를 “이권 카르텔”이라고 모욕하더니 끝내 비판 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갔다. 전 국민에 듣기평가를 강요한 ‘바이든-날리면’ 사태에서 보듯 거짓말조차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민심을 조금이라도 두려워했다면 35개월 내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초유의 퇴행은 없었을 것이다.

윤석열은 독단과 불통으로 민심과 담을 쌓았으나 명품백 수수·국정개입·주가조작·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등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숱한 의혹은 ‘아내 사랑’으로 감쌌다. 자연히 국정 지지율은 갈수록 내리막이었고, 총선에선 참패했다. ‘입틀막’으로 해결되지 않자 “좋아 빠르게 가” 방식으로 한 방에 해결하려던 게 비상계엄이다. 그래서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한다는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은 한 치도 동의할 구석이 없었다.

그날 오후 10시23분 윤석열이 기습 선포한 비상계엄은 소식을 듣고 무작정 여의도로 달려간 시민들에 의해 저지됐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던 고등학생과 대학생, 국회에 진입하려는 군인에게 “하지 마!”라고 울부짖던 여성, 장갑차를 막아섰던 중년 남성들이 없었더라면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는 불가능했다. 군인들의 내면에 각인된 민주주의의 ‘정언명령’은 2차 계엄을 좌절시켰다. 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을 전원일치로 파면하며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다고 한 것은 한 자도 틀린 게 없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웃나라 일본과 다른 것은 끈질긴 민중 저항의 역사에 있다. 4·19, 5·18, 6·10으로 면면히 이어져온 시민들의 저항정신은 비상계엄부터 탄핵 인용까지 123일 동안 주요 고비마다 유감없이 발휘됐다. ‘가장 밝은 빛’을 들고나온 시민들이 ‘다시 만난 세계’와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여의도 국회 주변을 ‘K민주주의 콘서트장’으로 만들었다. 남태령에선 2030 여성과 소수자들이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 길을 뚫었으며, 은박지로 몸을 감싼 ‘키세스 시민’들이 윤석열 체포를 위해 한남동 아스팔트 위에서 밤을 지새웠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여러 차례 좌절했지만 결국은 민주주의 쟁취에 성공한 나라다. 윤석열은 민주주의를 훼손시켰지만 시민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resilience)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그래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더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지난해 12월7일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서 응원봉을 든 참가자들이 탄핵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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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논설위원 park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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