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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대통령 파면 큰 상처 … 대한민국 달라져야 한다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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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8년 만이고 2022년 5월 취임한 윤 전 대통령은 임기를 3년도 채우지 못했다. 한국 헌정의 되풀이되는 비극에 탄핵 찬반을 떠나 모든 국민이 상처받았다.

헌재 변론 종결 이후 한 달 이상 선고 결과를 놓고 온갖 추측과 소문이 난무했다. 헌재 평의가 예상보다 길어진 탓도 있지만 여론이 탄핵 찬반으로 양분되면서 각자 믿고 싶은 것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재의 결론은 명확했다. 5가지 국회 탄핵소추사유를 헌법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모두 인용했다. 국가비상사태가 아닌데도 헌법상 요건을 어겨가며 불법으로 계엄을 선포했다고 못 박았다. 군경을 동원한 국회 봉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행위를 위법·위헌으로 규정했고 심지어 계엄선포에 필요한 국무회의 요건조차 갖추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절차적 문제에 대한 언급을 제외하면 별도 의견도 거의 없었다.

헌법재판관 정치 성향이 보수와 진보로 갈린 상황에서 나온 만장일치는 법과 상식 어떤 기준에서도 12·3계엄은 합리화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헌재 선고를 두고 탄핵 찬성 측은 환호했고 반대 측은 '정치적 재판'이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이것은 싸움도 아니고 호오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 헌법과 민주주의가 허용할수 있는 행위의 범위를 규정하는 문제였다. 탄핵이 인용되지 않았으면 제2, 제3 계엄의 문이 열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후퇴했을 것이다. 윤 대통령 파면은 시대착오적 권력 남용을 헌법 절차에 따라 징치함으로써 공화정의 건강성을 확인한 의미가 있다. 이런 절차의 작동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그러나 지금 보는 것은 최소의 형식 민주주의일 뿐 결코 정상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한 명 건너 한 명꼴로 대통령이 탄핵소추되거나 파면됐다. 6공화국 헌정 체제에서 문재인을 제외한 모든 전직 대통령 본인 또는 직계 가족이 사법처리됐으며 문 전 대통령은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다. 극단적 정치 대결과 보복의 악순환이 시시포스적 비극을 낳고 있다. 12·3 계엄은 변호할 수 없는 반칙이었으나 이에 이르게 된 데는 윤석열 정부에서 무려 30차례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거대 야당의 책임이 크다. 국민연금 개혁안 통과 정도를 제외하면 최근 수년간 여야가 합의해서 무엇인가 이뤄낸 사례를 찾기 힘들다. 대한민국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대결과 적의, 다수결의 공학에 의해 굴러가고 있다.

시민사회도 진영으로 쪼개졌다. 상대 진영을 향한 증오에 매몰된 나머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능력은 퇴화했다. 성찰이 사라진 공간을 '이념 장사꾼'들이 파고들어 유튜브 등에서 갖은 음모와 거짓을 퍼 나른다. 윤 전 대통령 본인이 선거부정 음모론에 심취한 끝에 계엄 발동으로 중앙선관위를 덮치는 기행을 벌였다. 이런 명백한 과오에도 탄핵 반대 여론이 40%를 넘나든 것은 진영에 갇힌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찰에 취약한지 잘 보여준다. 정치인에 요구되는 도덕성과 인격의 기준은 계속 낮아져 상대편을 공격할 능력만 있다면 범죄력과 거짓말 따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저질의 정치가 악성의 시민사회를 낳고 그 시민사회가 정치를 더 타락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조기 대선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창출되더라도 이런 풍토와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서는 비극을 예약한 것이나 다름없다. 갈등과 분열이 하루아침에 봉합될 리도 없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순탄과는 거리가 멀다. 대한민국 역사는 한미동맹, 산업화,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일을 함으로써 현상을 타파한 반전과 도약의 역사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좁게는 갈등 정치의 온상이 돼버린 1987년 헌정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넓게는 더 통합되고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비전은 계엄과 탄핵 사태로 상처받은 자존심과 낮아진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두 번째 대통령 파면이라는 비극을 교훈 삼아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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