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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헌법 지킨 시민의 승리,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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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서 탄핵 선고 생중계 대형 화면을 통해 헌법재판소가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선고하자 환호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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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와 혼돈의 터널을 지나 마침내 정의가 도착했다. 12·3 비상계엄이라는 초헌법적 폭거로 자멸을 재촉한 윤석열은 취임 2년11개월 만에 전직 대통령이 됐다. 위협받았던 헌법이 주권자와 함께 되살아났고, 도전받았던 민주주의도 다시 일어섰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재판관 8인 전원일치다. 국민과 헌법, 민주주의의 승리다.



헌법재판소는 4일 비상계엄 선포는 실체적·절차적 요건을 위반했고, 국회에 대한 군경 투입, 국회·정당 활동을 금지한 포고령 발령,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법조인 위치 확인 시도 등 5가지 탄핵소추 사유 모두 헌법·법률 위반이라고 밝혔다. 헌재는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준엄하게 판시했다.



빠른 속도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경제·문화 강국 대한민국이 윤석열이라는 비민주적, 반문명적, 전근대적 통치자를 보유했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의 집권 기간 내내 퇴행이었다. 경험도 준비도 없이 대통령직에 오른 그는 국정을 검찰 조직처럼 운영했다. 시민사회, 국회, 야당, 언론 등 비판 세력은 공존·타협이 아닌 배제·처단의 대상이었다. 공정과 상식을 내걸었으나 실상은 불공정과 비상식이었다. ‘반국가세력 일거 척결’과 ‘부정선거’라는 광기와 망상에서 비롯된 12·3 계엄은 이 같은 퇴행들의 결정체였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8년 만에 대통령이 두번째로 파면된 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그러나 두번의 대통령 탄핵은 시민의 상식과 헌법적 열망의 승리라는 점에서 우리의 자랑이자 희망이기도 하다. 반동을 이겨낸 원천은 주권자 국민이다. 윤석열과 극우 세력, 여당 정치인들이 궤변과 선동으로 어지럽혀도, 국민들은 흔들림 없이 “헌법 수호”를 외쳤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를 살려낸 것은 언제나 시민이었다.



독단과 광기의 통치자 윤석열 파면은 끝이 아니라 국가 정상화로 가는 새로운 시작이다. 극심해진 사회 분열과 갈등부터 수습해야 한다. 계엄·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심리적 내전’이라 할 정도로 정치 양극화가 깊어졌다. 헌재 결정 이후 물리적 충돌 우려도 높다. 모두의 자제와 포용이 절실하다. 적대와 혐오를 활용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사악한 행태가 있어선 안 된다. 윤석열은 헌재 결정에 ‘승복’ 언급은 없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하다”고만 했다. 국가적 혼란을 일으킨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지지층에도 자제를 요청해야 한다.



합리적 보수를 다시 세우는 일도 절실하다. 계엄·탄핵 과정에서 음모론과 혐오에 빠진 극우 세력의 급부상, 거대 보수정당의 극우화를 목격했다. 국민의힘이 윤석열·극우와 결별하고 좌표를 재정립하지 않는다면 보수 전체의 존립이 흔들리고, 한국 정치는 발목을 잡힐 것이다.



포용과 통합을 추구하되, 내란 세력 청산은 철저히 해야 한다.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인 윤석열은 내란죄 형사재판에서 또 온갖 법기술을 동원하려 할 것이다. 사법 당국은 내란 핵심 가담자들을 한 치의 관용 없이 단죄해 역사에 교훈을 남겨야 한다. 윤석열·김건희의 불법 선거개입과 국정농단, 김건희 주가조작 의혹 등도 사법적 심판을 내려야 한다. 검찰과 고위 관료 등의 내란 옹호 행위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3명의 임명을 거부해 헌재 정상 가동을 방해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최상목 경제부총리의 위헌 행위를 그냥 넘겨선 안 된다. 검찰·사법 시스템 개혁 필요성도 잊어선 안 된다.



아울러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압박 등 안팎의 민생·통상·안보 위기에도 힘을 모아야 한다. 60일 안에 조기 대선이 치러지겠지만, 그때까지도 국정의 공백을 방치할 순 없다. 정치권과 행정부가 ‘내란 사태’로 지칠 대로 지친 국민들의 민생을 제대로 살피는 것이 그간 국민들에게 끼친 잘못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길이다.



윤석열 파면은 정치 개혁의 기회를 열어줬다. 계엄은 윤석열 개인의 폭주였지만,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이 더욱 커졌다. 대선과 맞물려 다양한 개헌 논의가 쏟아질 것이다. 6월 초 열릴 조기 대선은 내란 청산과 정치 개혁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설계하고 비전을 겨루는 장이 되어야 한다. 늦더라도 어김없이 봄은 왔듯이, 우리는 고통과 상처를 씻어내며 내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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