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트럼프 행정부는 아주 큰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즉, 달러 패권의 문제점을 해소하면서도 달러 패권은 유지하려 한다는 딜레마입니다. 달러 패권을 통해 미국 정부는 국민에 대한 세금 부과라는 부담 없이 화폐를 발행해 재정적 수단을 손쉽게 마련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종이돈인 달러가 국제화폐로 유통된다는 것의 이면에는 무역적자가 있습니다. 즉, 달러패권과 무역적자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무역적자가 이뤄져 미국내 종이돈 '달러'가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무역적자가 심해지면 장기적으로는 미국 경제를 약화시키고 결국 달러 패권을 훼손합니다. 이것을 '트리핀 딜레마'라고 합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에 임명된 스티븐 미란은 '좁은 길'(narrow path)이기는 하지만 일견 모순된 목표들을 모두 달성하는 방법이 있다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설득력이 강해 보이진 않습니다. '트리핀 딜레마'를 도대체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아직 뾰족한 수가 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3월 2일 UC버클리 경제학, 정치학 교수 배리 아이켄그린의 '에세이'를 실었는데, 필자는 단지 경제적 요소뿐만 아니라 '신뢰'라는 정치적 요소도 달러의 패권 지위 유지에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트럼프식의 보호무역주의가 미국의 글로벌 무역비중을 낮추면서 달러의 '쓸모'를 줄일 뿐만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면서 달러에 대한 '신뢰'도 낮아질 것이라고 말합다. 달러 패권 유지에는 양뿐만 아니라 질적인 요소가 있는데 트럼프가 이 모든 것을 약화시키려 한다는 비판입니다. 이 에세이는 한 나라의 통화가 어떻게 국제화폐가 되는지 역사적으로 추적하는데, 특히 런던 금융권과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의 경험을 미국에 적용하는 과정에 대한 서술이 흥미롭습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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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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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가 과분하게도 유일한 진정한 글로벌 통화로 자리 잡은 이유를 설명하려 할 때, 경제학자들은 흔히 미국의 세계 GDP 비중이나 미국 금융시장의 두터움 및 탄력성과 같은 구조적 요인들을 지목한다.
이러한 접근은 많은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공유하는 낙관적 관점을 뒷받침한다. 즉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미국이 세계 최대 경제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한, 달러는 계속해서 안전자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제2차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은 숫자가 모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역사가들이 말해주듯, 국제통화의 부상과 쇠퇴를 결정짓는 것은 추상적인 경제나 시장이 아니라 바로 사람들의 행동이다. 국제 달러 체제를 만든 것도, 그 기반이 되는 제도를 구축한 것도 결국 사람이었고, 그 제도가 지속될 것인지 무너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결국 사람들이다.
국제통화로서 달러를 낳은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아마도 폴 워버그(Paul Warburg)일 것이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의 명문 은행가문인 바르부르크(Warburg, 영어식 발음으로 '워버그') 가문 사람으로서 젊은 시절 함부르크, 파리, 런던에서 국제 금융 업무를 익혔고, 1895년에는 혼인을 통해 미국의 쿤 로브(Kuhn Loeb) 은행가문에 연결되어 1902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폭넓은 국제 은행 업무의 경험을 통해 워버그는 전 세계 각지의 상인과 은행가들이 무역 신용과 투자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런던을 거점으로 삼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당시 미국도 역시 국제 신용의 대부분을 런던과 파운드화에 의존하고 있었다.
귀화 국민으로서 워버그는 미국에 대한 충성심이 깊었다. 그는 미국 경제가 런던과 파운드화에 의존하고 있어서 직접 통제할 수 없는 해외 변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점을 우려했다. 영국의 국제 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은 단순한 민간만의 역량이 아니라, 시장에 유동성과 안정성을 뒷받침해주는 영국 중앙은행, 즉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의 역할에 기댄 것이었다. 미국이 국제무역에서 달러의 사용을 확대하려면, 중앙은행이 없는 한 근본적인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판단했다.
이에 따라 1906년부터 워버그는 중앙은행 설립을 위한 공개적 논의의 선봉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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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빈 에디팅 디렉터 subin.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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