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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정치적 해법' 잊은 정치에도 책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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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판결문에 정치방식에 대한 문제의식

군·경 동원한 尹꾸짖으며, 국회도 지적 나서

탄핵직후 이재명 "정치권 깊이 성찰해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마침내 파면됐다. 정치에 대화와 타협 대신 군과 경찰을 동원하려 했던 현직 대통령의 시도는 결국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와 탄핵소추,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의 잘못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동시에, 우리의 정치에 대해서도 죽비를 내리쳤다.

4일 헌재의 윤 전 대통령 탄핵 선고 결정 요지에는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에 이르게 된 과정과 관련해 '그럼에도 정치로 풀었어야 했다'는 내용이 시종일관 담겨 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해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하여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했고, 군경을 동원하여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며 '파면'을 주문했다.

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위해 자리에 착석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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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결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의 입장을 헤아리는 듯한 언급이 몇차례 등장한다.

헌재는 야당의 잇따른 탄핵심판과 올해 예산안과 관련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감액 예산안 처리한 부분, 야당의 일방적 법률 처리 등을 언급한 뒤 "그 과정에서 피청구인(윤 전 대통령)은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되어 가고 있다고 인식하여 이를 어떻게든 타개하여야만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표현했다.

이외에도 "피청구인이 국회의 권한 행사가 권력 남용이라거나 국정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은 정치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라고도 했다. 최소한 윤 전 대통령이 느끼는 상황 인식 자체에 대해서는 인정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국회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하였어야 한다"고 했다. 국회를 지칭했지만 거대야당을 상대로, 협상과 타협 노력이 없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다만 헌재는 그 책임이 국회나 야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윤 전 대통령 등 집권세력에도 있다고 봤다. 헌재는 "피청구인과 국회 사이에 발생한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고,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라고 판단했다. 쌍방책임이라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인식한 국정마비 등의 위기의 책임은 국회, 보다 구체적으로 다수의석을 보유한 야당 외에도 윤 전 대통령 등 집권 세력 역시 함께 진 문제라는 것이다.

다만 헌재가 근본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윤 전 대통령이 이를 해소하기 위해 꺼내든 방법의 문제였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에게 국회와의 관계에 대해 존중하고 헌법적 테두리 내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이뤘어야 한다고 봤다. 군과 경찰을 동원하는 비상식적인 방법이 아닌 정치의 방법으로 해법을 모색하는 게 대통령에게 주어진 역할이고 기대치라는 것이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에게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하였어야 한다"며 "국회의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라고 판단했더라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갈등 해소에 대해서도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돼야 할 정치의 문제'라며 "정치적 견해의 표명이나 공적 의사결정은 헌법상 보장되는 민주주의와 조화될 수 있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과 같은 위헌적 수단이 아닌 정치의 수단을 모색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국회에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파면 선고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5.4.4 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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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탄핵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야당의 승리를 의미하는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과 관련해 공을 국민께 돌린 뒤 반성의 뜻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 대표는 "현직 대통령이 두 번째로 탄핵된 것은 다시는 없어야 할 대한민국 헌정사의 비극"이라며 "저 자신을 포함한 정치권 모두가 깊이 성찰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될 일이다. 더 이상 헌정 파괴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치가 국민과 국가의 희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특별 담화를 통해 '통합'을 강조하며 우리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정치적 입장의 차이와 갈등을 헌법과 법률의 틀 안에서 해소하고 다양성을 경쟁력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라며 "대립과 갈등, 분열을 부추기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고 극단적 대결의 언어를 추방하자"고 촉구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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