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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에 갇혀 혁신하지 못한 엔씨소프트의 '예고된 추락'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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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기 기자]

엔씨소프트가 위기에 봉착했다.[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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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엔씨소프트는 벤처 기업의 신화로 불렸다. 리니지가 유례없는 흥행을 일으키면서 창업 3년 만에 코스닥에 상장하고, 주가가 100만원까지 치솟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 팬데믹 국면까지 엔씨의 전성기는 계속됐다. 확률형 아이템은 돈을 쓸어 담았고, 그 덕분에 리니지 시리즈는 매년 돋보이는 실적을 올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엔씨소프트의 추락을 예견하는 이는 없었다.

# 하지만 지금의 엔씨소프트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에 실망한 충성고객마저 등을 돌리고, 신작은 내놓는 족족 고배를 마시고 있다. 재탕 삼탕한 리니지 시리즈도 매출이 줄면서 힘을 잃기 시작했다. [※참고: 신용평가회사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엔씨소프트의 장기신용등급을 'AA 부정적'에서 'AA- 안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

# 뒤늦게 위기를 깨달은 엔씨소프트는 전문가를 앞세워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혁신성을 찾아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엔씨소프트는 과연 부활의 날개를 펼 수 있을까. '엔씨소프트 과거와 현재' 마지막편이다.

엔씨소프트가 추락하고 있다. 게임 이용자부터 기업 실적, 주가까지 모든 지표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넷마블과 넥슨과 함께 '3N'이라 불리던 것도 이젠 옛말이 된 듯하다. 엔씨소프트는 어쩌다 이 지경까지 몰린 걸까.

이 질문을 풀려면 엔씨소프트를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은 '리니지'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시계추를 1997년으로 돌려보자. 자본금 1억원으로 엔씨소프트를 차린 김택진 대표는 이듬해인 1998년에 게임 하나를 인수했다. 한국 1세대 온라인 게임 '리니지'다. 재미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비즈니스 모델과 홍보가 문제였다. 당시 인터넷 이용자가 1만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소비자가 집에서 인터넷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김 대표는 이 문제를 PC방 영업으로 풀어냈다. PC방 사업자들을 설득해 월 정액제로 리니지를 서비스한 건데, 이게 돌풍의 발판이 됐다. PC방을 등에 업은 리니지는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유료 서비스를 시작한 1998년에 1000명의 동시접속자(이하 동접)를 기록했고, 2년 만인 2000년엔 국내 최초로 동접 10만명을 기록했다.

엔씨소프트의 실적도 수직 상승했다. 창사 2년 만인 1999년 매출이 80억원을 넘어섰다. 이듬해인 2000년엔 전년의 7배(582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기세를 몰아 엔씨소프트는 그해 7월 코스닥에 상장하고, 3년 만인 2003년 5월엔 코스피로 이전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엔씨소프트는 '벤처기업의 신화'란 별칭을 얻었다.

엔씨소프트는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리니지2(2003년), 아이온(2008년), 블레이드&소울(2012년) 등 출시하는 게임마다 어김없이 대박을 터뜨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엔씨소프트는 '리니지'에 만족하진 않았다. 리니지의 2D 그래픽에 안주하지 않고 리니지2를 과감히 3D로 제작한 건 대표적 사례다.

[사진 | 엔씨소프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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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생긴 건 엔씨소프트가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하면서다. 2017년 6월, 엔씨소프트는 리니지의 모바일 버전 '리니지M'에 확률형 아이템을 적용했다. 확률형 아이템은 '확률에 의해 결과가 결정되는 아이템'이다.

게임사가 입력한 확률에 따라 다양한 보상이 나오는데, 최고의 성능을 뽐내는 무기가 나올 수도, '꽝'이 나올 수도 있다. 플레이어로선 좋은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확률형 아이템을 반복해 구매할 수밖에 없다.

이런 도박 같은 요소는 리니지M의 인기를 부채질했고, 엔씨소프트의 실적은 더더욱 가파르게 늘어났다. 엔씨소프트는 2017년 하반기 모바일 매출만 9953억원을 기록했는데, 이 덕분에 엔씨소프트는 그해 역대 최대 매출(1조7587억원·당시 기준)까지 갈아치웠다.

엔씨소프트 입장에서 2020년 몰려온 팬데믹은 부차적인 호재였을지 모른다.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온라인 게임의 수요가 늘어난 게 긍정적으로 작용했지만, 엔씨소프트는 확률형 아이템이란 확실한 무기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무기가 엔씨소프트를 위협하는 '양날의 검'으로 돌변하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좋은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너무 낮다는 사실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엔씨소프트의 '확률형 아이템'에 불만을 갖는 이들이 늘어났다. 균열의 시작이었다.

문제는 엔씨소프트가 '균열의 조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점이다. '리니지2M(2019년)' '리니지W(2021년)' 등 신작에 확률형 아이템 기반의 수익 모델을 계속해서 탑재했다. 심지어 리니지가 아닌 다른 게임에도 확률형 아이템을 접목했다. 고전 게임 '트릭스터'를 리메이크한 '트릭스터M(2021년)'이 대표적이었다.

조용히 분노하던 이용자의 분기가 드디어 표출됐다. 그들은 트릭스터M을 대놓고 비판하면서 등을 돌렸다. 결국 트릭스터M은 사실상 '죽은 게임'으로 전락했지만(2024년 3월 서비스 종료), 이번에도 엔씨소프트는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확률형 아이템'을 손보긴커녕 리니지 IP를 재탕 삼탕하는 전략에 매몰됐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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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발은 더 커졌다. 리니지 시리즈의 매출이 줄기 시작한 데다 신작까지 흥행에 실패하면서 2023년을 기점으로 실적이 고꾸라졌다. 2022년 2조5718억원이었던 매출은 2023년 1조7798억원으로 30.7%가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5590억원에서 1373억원으로 75.4%나 빠졌다. 지난해엔 상장 이래 처음으로 영업적자(1092억원)까지 기록했다. 이쯤 되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 부를 만하다.

[※참고: 신용평가회사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엔씨소프트의 장기신용등급을 'AA 부정적'에서 'AA- 안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나신평은 "국내 게임시장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사업환경이 악화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리니지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한 모바일 게임의 매출 감소세, 주요 신작 공백, 신작의 흥행 부진 등으로 올해 매출을 회복하는 데 시일이 걸릴 전망"이라고 말했다.]

매니지먼트 관점에서 '벤처기업 신화'로 일컬어지던 엔씨소프트의 추락엔 시사점이 많다. 첫째, 확실한 무기는 언제든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거다. 리니지 덕에 고속 성장한 엔씨소프트의 발목을 잡은 건 결국 리니지였다.

직장인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서 한 엔씨소프트 직원이 남긴 글을 보자. "IT 회사답지 않은 비효율적인 업무체계도 문제지만, 모든 IP(지식재산권)를 리니지화하려는 상부의 방향성이 있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기가 쉽지 않다. 게임 개발에 욕심을 가지고 일하기가 어려운 조직문화다."

시사점은 또 있다. 조직의 문제를 꿰뚫어 보지 못한 경영진의 전략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엔씨소프트가 몸소 보여준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4월 사모펀드에서 '구조조정 전문가'로 활동하던 박병무 전 VIG파트너스 대표를 공동대표직에 앉혔다. 구조조정으로 기업 체질을 바꿔 재도약하겠다는 게 김택진 공동대표의 계획이었다.

지금까진 박 대표의 의도대로 흘러간 듯하다. 지난해 엔씨소프트는 대규모 희망퇴직을 진행해 500명이 넘는 직원이 퇴사했다. 게임 외 사업들도 과감히 분사해 회사 몸집을 줄였다. 관건은 그 과정에서 엔씨소프트가 어떤 혁신점을 찾았느냐는 거다. 냉정하게 말하면, 구조조정 전문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실제로 김택진·박병무 공동대표 체제가 돛을 올린 이후 엔씨소프트는 이렇다 할 혁신을 보여주지 못했다. 최근 방치형 게임 '저니 오브 모나크', 서브컬처 게임 '호연'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에 도전하고 있지만, 두 게임 모두 저조한 이용자를 기록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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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뒤처진 그래픽과 스토리, 게임 시스템이 문제였다. 이용자들은 "그저 그런 게임이다" "리니지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며 혹평을 남겼다. 게임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개발에만 수년이 걸리는 게임을 단기간에 갈아엎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엔씨소프트가 이전과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년 전 한 매니지먼트 전문가는 엔씨소프트를 이렇게 표현했다. "1990년대 벤처붐을 타고 등장해 삼성, LG 등 대기업과 자웅을 겨루는 곳은 엔씨소프트밖에 없어요. 시가총액을 보면 놀라운 일이죠. 그들의 장점은 기민하고 혁신에 능하다는 거예요. PC방 영업망을 뚫고, 리니지를 전면에 내세운 걸 보세요. 엔씨소프트가 얼마나 더 성장할지 지켜볼 참이에요."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언젠가부터 혁신하지 못했고, '리니지의 감옥'에 갇혔다. 엔씨소프트는 20년 전처럼 혁신할 수 있을까.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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