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통치 에르도안 대통령, 야당 대선 후보 이마모을루 시장 체포
반대 시위에 200만명 참여… 그러나 미국·유럽은 입 다물고 방관
법과 물리력으로 상대 가두는 건 하수, 설득과 논리 어디로 갔나
그래픽=이철원 |
두 사람 사이의 악연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9년 3월 지방선거에서 이스탄불 시장에 이마모을루가 신승하면서부터다. 튀르키예의 상징 이스탄불을 25년 만에 야당에 내준 것은 에르도안에게 치명적이었다. 이마모을루의 직전 경력은 이스탄불 외곽의 한 기초단체장이었다. 그런 이마모을루가 전직 총리 출신의 거물급 여당 후보를 꺾고, 일약 인구 1600만 이스탄불의 광역시장이 된 것이다. 다급해진 에르도안은 이마모을루를 다중 압박하며 견제에 나섰다.
첫째, 선거 무효화였다. 결과를 뒤집을 빌미를 찾았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개표 감시원 자격에 일부 문제가 있었다며 재선거를 선언했다. 무리였다. 3개월 후 재선거에서 이마모을루는 다시 이겼다. 역풍이 불어 첫 선거 때의 0.16%포인트보다 훨씬 더 큰 9%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다. 둘째, 형사 기소였다. 선거 무효를 결정한 선관위에 대해 이마모을루가 “멍청이”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기소했다. 2022년 1심에서 법원은 공직 모욕 혐의 유죄와 함께 징역 2년 7개월을 선고했다. 이마모을루는 항소했고 상급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셋째, 지원 차단이었다. 거대 도시 이스탄불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교부금이 필수적이다. 중앙정부는 선출직 이스탄불 시장의 업무 범위에 속하는 권한을 일부 이관시켜 임명직 주지사에게 자원과 권한을 몰아줬다. 정부 지원이 축소되었기에 시장이 나서서 의욕적으로 추진할 만한 사업 재원이 별로 없었다.
전방위적 견제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지방 선거에서 이마모을루는 에르도안의 심복인 여당 후보를 12%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다시 이긴다. 1기 재임 시 뚜렷한 성과나 업적을 남겼다는 평가는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마모을루와 그가 속한 야당인 공화인민당이 압승한 것은 결국 에르도안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경제난과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감 때문 아니었을까?
지지도 상승세를 탄 야당은 조기 대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분위기를 띄우면서 아예 대선 후보 선출 일정을 지난달 24일로 잡았다. 그러나 선출 엿새 전, 갑자기 이스탄불대학교가 편입 당시 규정 위반을 이유로 이마모을루의 학사 학위를 무효로 하더니, 다음 날 경찰이 부패와 테러 지원 혐의로 이마모을루를 전격 체포, 구금한 것이다. 튀르키예 헌법은 대학 졸업자 및 범죄로 인한 유죄 판결 이력이 없는 후보에게만 대통령 선거 출마 자격을 부여한다. 이중 족쇄가 걸린 셈이다. 야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이마모을루의 대선 출마를 막기 위한 음모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예정대로 전당대회를 열어 1500만 당원 투표 중 1321만여 표를 획득한 이마모을루를 차기 대선 후보로 궐석 선출했다. 이젠 조기 대선이 가시화될 경우 자칫 유력 야당 후보는 법적으로 출마가 금지된다.
에르도안은 정치의 고수로 통한다. 여러 차례 선거와 쿠데타와 개헌 그리고 대지진 등 만고풍상을 겪으면서도 왕정도 아닌 공화국에서 23년 동안 권력을 놓치지 않은 승부사다. 이번에도 경쟁자를 사법으로 제압하고 종신 집권에 다가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에르도안의 모습이 정답일까? 상대를 법이나 물리력으로 가두어 이기는 이는 하수다. 유권자들의 지지를 획득하는 정책과 설득의 논리로 승부해야 고수다. 그러므로 에르도안이 싸워야 할 상대는 이마모을루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자신일 것이다. 2002년 집권할 때 첫 마음이 어땠는지, 연평균 경제성장률 7%에 육박하던 시절의 몸놀림이 어땠는지, 그때 국민들이 왜 자신에게 열광했었는지를 다시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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