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채 상병 사망 사건 등
가족 잃고 존재 무시당하던 사람들
“상식선 회복이 탄핵 이후 출발선”
이태원참사 유가족인 박영수씨(가운데)가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 탄핵 촉구 집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소식을 듣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박채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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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유가족,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해온 해병대 예비역,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파면’을 결정한 지난 4일에도 거리에 있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결정 요지를 한 문장씩 읽어내려갈 때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눈물을 흘렸고, 서로 부둥켜안았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남훈씨의 어머니 박영수씨(57)는 탄핵이 되면 호탕하게 웃겠다고 했다. 아들을 잃은 뒤 웃을 여유도 없었고 웃더라도 죄스러웠다. 안국역 인근 탄핵 촉구 집회장에 있던 박씨는 막상 ‘파면’이란 단어를 듣자 “만세!” 한 번 하곤 연신 눈물을 닦느라 바빴다. 박씨는 “아이를 잃은 후 싸워온 시간이 참 길었다는 생각에 갑자기 울컥했다”고 말했다.
지난 3년은 박씨에게 ‘속에서 천불이 난다’는 말을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정부는 참사 유가족을 다독이기보다 악의적인 표현을 쓰면서 유가족이 숨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며 “국가에서 지원한다고 하지만 진정한 사과도 한마디 없으니 트라우마가 심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숨지 않았다. 국회로, 거리로 나가 “진상규명”을 외쳤다. 오체투지도, 삭발도 했다.
박씨는 “오늘만큼은 아들한테 ‘엄마가 이만큼 했다’고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정부가 (우리를) 비난하고 진실을 감추기 위해 가한 핍박을 견디지 못했다면 오늘 같은 날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사회적 참사가 발생했을 때 숨김없이 공개하는 국가, 책임자를 엄중하게 처벌하는 국가, 더는 국민의 생명이 희생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마련하는 국가를 기대한다.
해병대 예비역 60여명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탄핵 촉구 집회에서 파면 소식이 들리자 벌떡 일어났다. 샴페인도 터트렸다. 이들은 “정말 고생했다” “칠십 평생 가장 기쁜 날” “해병대는 끝까지 간다”고 말했다. 울먹거리며 서로를 부둥켜안기도 했다.
2023년 7월 경북 예천에서 수해 실종자 수색 작업 중 채 상병이 순직했으나 진상규명의 시계는 멈춰 있었다. 정부는 국회가 통과시킨 ‘채 상병 특검법’에 세 차례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우리가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던 건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채 상병 사건을 덮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김계환(당시 해병대 사령관)을 비롯한 해병대 연루자와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이종섭(전 국방부 장관) 등 군 인사들이 다 처벌받고 해병대의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채 상병을 잊어갔다. 예비역들은 망각과도 싸웠다고 했다. 정 회장은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 항명 혐의 재판이 이달부터 서울고법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이 역시 잊힌 것 같다”며 “많은 국민, 특히 해병대 예비역들의 참여도가 전체적으로 저조한데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도 헌재 인근 탄핵 촉구 집회장에서 윤 전 대통령 파면 소식을 듣고 옆에 있던 활동가 길벗(활동명)과 눈물을 닦아주며 서로 축하했다. 양이 대표는 무엇보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윤 전 대통령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명제를 깡그리 무시하는 국가 원수의 말에 화가 나기보다 놀라웠다고 했다. 양이 대표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국 사회의 상식선이 무너지는 일이 자주 있었다”며 “결국 소수자인 여성, 약자인 장애인, 이주민 등이 낭떠러지로 먼저 몰리게 됐다”고 했다.
‘상식선을 회복하고 무너진 국가 시스템을 회복하는 것.’ 양이 대표는 이것이 우리 사회가 ‘탄핵 이후’를 만들어가기 위한 출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너지는 속도는 빠르지만 회복에는 시간이 몇배가 걸릴 수 있다”며 “그렇지만 계엄을 막아낸 것도, 탄핵을 이뤄낸 것도 시민들이기 때문에 느리더라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채연·박정연·우혜림 기자 applau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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