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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목)

‘나홀로 사장’ 골목 상권엔 언제 봄이 오나요 [6411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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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할 삼겹살 기름 손질하는 모습입니다. 모든 고기의 기름은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깔끔하게 손질 후 판매합니다. 사진 강명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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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strong박병래 | 서울시 성북구 소재 정육점 운영/strong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를 입학할 무렵 경기도 고양시로 이사했다가 곧 서울시 광진구 자양동으로 옮겨 고등학교까지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정육 일은 서른한살부터 시작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처음에는 축산전문지에 입사해서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서울에선 축산물 공판장(경매장)이 송파구 가락시장에 있었습니다. 어릴 적에 같은 동네에 살던 친한 형과 친구 서너명이 가락시장 중매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농협 소속이었는데, 그중에 친한 형님이 정육점 체인을 운영하고 있었고, 장사를 같이 하자고 석달을 설득하셨어요. 그 꼬임에 넘어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7년여의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바로 정육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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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형님의 정육점 막내가 되어 발골과 정형, 부위별 손질, 손님 응대, 기계 사용법 등을 배웠는데 소와 돼지 모두를 습득하는 데 다섯달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막내 시절 저는 정육점 선배들이 해주는 말을 모두 기록하고 동료에게 계속 묻고 그래도 모르는 게 있으면 이사님께 전화해서 가르쳐달라고 졸랐어요. 늦게 시작했으니 빨리 배우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팀장이 되어 이태원 근처에 있던 체인점 한곳을 맡게 되었고 이후 몇년 동안 여러 매장을 옮겨 다녔어요. 2007년에 저를 정육 일로 이끌었던 경매사 형님이 부도가 나 가지고 있는 체인점 모두를 분양했어요. 그 형님과 함께 중매인을 했던 친구가 지금 제가 운영하는 정육점을 분양받고는 제게 도와달라고 연락을 했어요. 2년 동안 이곳에서 일을 하다가 제가 섰던 보증 문제가 터져서 거의 전 재산을 날렸어요. 남아 있던 돈 4500만원을 들고 강동구 명일동에 있던 정육점을 제 명의로 처음 열었습니다. 4년 동안 그곳에서 어렵게 꾸려가고 있었는데 지금의 가게를 넘겨받을 생각이 있는지 갑작스레 의사 타진이 들어왔어요. 바로 일주일 뒤에 명일동 정육점 셔터만 내려놓고 바로 지금 가게로 왔습니다. 그때가 2015년께였습니다. 그 뒤로 10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어요.





날마다 오전 10시에 가게 문을 열고 밤 10시에 문을 닫습니다. 제 매장은 쉽게 손님이 접근해서 간편하게 고기를 사 갈 수 있도록 문을 항상 열어놓고 장사를 하는 오픈매장이라서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습니다. 또 고질적인 근골격계 질환과 같은 직업병을 달고 살고 있어요. 매장 주변에 아파트 재개발 구역이 있어요. 재개발을 시작하고 그 구역의 주민들이 이사를 한 3년 전에 매출이 반토막이 났어요. 그 전에는 저를 포함해 직원이 3명이었는데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지금은 혼자서 합니다.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정육점은 우리 가게이지만 반경 50미터 내에 정육점이 우리 가게를 포함해서 세곳이에요. 정육점끼리의 경쟁도 크지만, 대형마트와의 경쟁도 점점 커지지요. 대형마트는 다양한 등급의 고기를 취급하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선택의 폭이 넓겠지요. 하지만 동네에서 오래 장사를 해온 우리는 고기의 질을 일정하게 유지해야만 해요. 저는 쇠고기는 한우 투뿔(1++), 돼지고기는 암퇘지 원뿔(1+)만 취급하니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지요. 동네 정육점 장사는 단골 장사입니다. 그래서 좋은 점도 있지만 어려운 점도 생기지요. 사실 단골손님들이 제게 주시는 정 때문에 힘들어도 계속합니다. 일이 많은 명절 때는 먹을 것을 가져다주시는 단골손님들이 계세요.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는 대량으로 육류를 유통하기 때문에 동네 정육점보다는 가격을 낮게 매길 수 있는데 정부는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펼쳐 더더욱 골목 상권을 얼어붙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취지로 발행된 온누리상품권 때문에 소비자들 일부가 전통시장으로 유입되어 골목 상권은 점점 더 얼어붙고 있습니다. 골목 상권에 대한 정책이나 지원은 전무한 상태입니다. 게다가 2024년 12월3일 계엄령 이후로 경기가 더욱 나빠져 골목 상권은 다 죽을 것 같아요. 골목 상권에 대한 낮은 금리 대출, 경기에 따른 임대료 조절 등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구술 정리 강명효 6411의 목소리 편집자문위원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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