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대원 공격, 휴지 조각 된 국제인도법
이스라엘 "하마스, 구급차 방패로 쓴다"
지난달 31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칸유니스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구급대원 장례식에서 친족들이 슬퍼하고 있다. 칸유니스=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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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사) 소속 구조대원 등에게 총격을 가해 15명이 숨진 사건을 둔 진실 공방이 격화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그간 "불을 끈 채 접근하는 의심스러운 차량에 사격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구급차가 총격 당시 경광등과 전조등을 모두 켠 상태였고, 국제법상 보호표지를 부착한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됐다. 표지 부착 차량에 공격을 가한 것은 국제법상 전쟁 범죄에 해당하지만 이스라엘은 구체적인 증거 없이 "실수가 있었다", "사망자 중 일부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조직원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스라엘 "하마스 증원병력으로 판단" 주장
6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은 지난달 23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라파 인근에서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소속 구조대원 8명과 팔레스타인 민방위 대원 6명, 유엔 직원 1명 등 총 15명이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내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군 발표에 따르면 구조대에 총격이 가해지기 앞서 같은 날 오전 4시쯤 사건 현장 인근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교전이 있었고, 구급차와 소방차가 인근 지역으로 이동한 것은 교전 후 두 시간 뒤다. 이스라엘군은 이들을 하마스의 증원 병력으로 판단하고 공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공격의 정당성도 재차 강조했다. 이스라엘군은 "사망한 15명 가운데 최소 6명이 하마스 요원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기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성명을 통해 "응급구조대원 살해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사망자들은 모두 국제인도법에 보호받아야 하는 인도주의적 인원들로, 비무장 상태였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적신월 부착 차량에 사격… 제네바협약 위반
지난달 23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라파 인근에서 출동 중인 구급차가 경광등과 전조등을 켜고 출동하고 있다. 구급차에는 국제법상 보호해야 할 의료 차량임을 나타내는 적신월이 표시돼 있다. 이 영상은 이스라엘군의 총격 직전 촬영돼 이날 사망한 구급대원의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것으로 팔레스타인 적신월사가 공개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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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5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사망한 구조대원의 휴대전화에서 총격 당시의 영상을 확인해 공개했다. 이 영상에는 경광등과 전조등을 환하게 밝힌 구급차와 소방차들이 현장으로 출동했고, 차량에는 제네바협약에서 보호하는 식별표장인 적신월(붉은 초승달)이 그려져 있었다. 적신월은 적십자와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표장으로, 적신월이 부착된 차량·인원을 공격하는 것은 국제인도법상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
그간 이스라엘은 "전조등과 경광등을 끈 채 수상하게 접근하는 차량이 있어 사격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후 영상이 공개되자 이스라엘군은 "실수가 있었던 듯하다"며 "초기 보고자가 착각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정정했다. 이어 이스라엘군은 "발포가 시작됐을 때 먼 거리에서 사격했다"며 "일부가 무장 세력임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미국도 이스라엘의 편을 들고 나섰다. 미국 국가안보회의(NSC)는 6일 대변인 성명으로 "하마스는 구급차와 인간 방패를 테러에 사용한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하마스의 책임을 묻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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