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택 교수 |
2025년 1분기,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테더(USDT)와 USD코인(USDC) 등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거래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약 58배 증가하며 60조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업비트 등 주요 거래소에선 USDT가 실제 원·달러 환율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며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이 원화결제 수단보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는 흐름이 구조화되고 있다는 신호다.
외화 중심의 거래 구조가 장기화될 경우, 국내 디지털 자산 시장의 안정성과 통화 주권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일본은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시키며 금융 혁신의 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스테이블코인 준비금의 안전성과 발행자 책임성을 명시한 법안을 도입했으며, 미국은 연방 차원의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반면 국내는 정책당국 간 역할 조율 및 법적 방향에 대한 공감대 형성 등 제도화 관련 논의가 여전히 초기 수준이다.
현장에서 체감되는 문제는 더 복합적이고 직접적이다. 기업과 투자자, 개발자 모두가 제도적 미비로 인해 의사결정에 제약을 받고 있다. 관련 법안이 국회 계류중인 토큰증권을 비롯해 탈중앙화 금융이나 실시간 디지털 지급결제 네트워크와 같은 신사업들은 해외시장에선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다. 이들 모델은 신뢰 가능한 법정통화 기반의 결제 시스템을 전제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런 기반 인프라가 국내에선 여전히 부재하며, 그 공백은 혁신 기업들이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구조적인 제약으로 작용한다. 결국 제도 설계의 공백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회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는 단순히 기술 실험이나 시장 확대보다 신뢰를 뒷받침하는 명확한 기준과 안전장치에서 출발해야 한다. 발행 주체의 자격 요건, 충분한 준비금 확보, 자금세탁방지 체계의 준수, 외부 회계감사 의무화 등은 기본 조건이다. 특히 예치금은 지급보증 요건 수준에서 엄격히 관리돼야 하며 국채 등 안전자산 매입이 통화량 증가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유동성 리스크와 거시경제적 파급을 최소화하려면 예치금 분리 보관 및 실시간 준비금 공개, 긴급 유동성 공급 장치 등 체계적인 관리 프레임이 함께 구축돼야 한다.
외환 규제와의 정합성 문제도 풀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은 국경을 넘는 결제와 자산 이전이 이뤄지기 때문에 기존 외환거래법과의 충돌 소지를 내포한다. 그러나 현행 외환법은 디지털 자산에 대한 정의나 적용 범위가 불명확하다.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을 위한 별도의 규제 틀을 마련하고, 외환관리 체계를 유연하게 재설계하는 것이 디지털 자산 생태계와 외환시장 안정성을 함께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이다.
한편 한국은행은 4월부터 '프로젝트 한강'이란 이름으로 CBDC 실거래 테스트에 돌입했다. 결제뿐만 아니라 디지털 바우처나 사회보장 서비스 등 다양한 공공정책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을 점검한다. 일각에선 CBDC가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대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두 제도는 발행 주체와 방식 및 민간 서비스와의 연동, 그리고 활용의 유연성 측면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가진다. 주요국들이 양자를 병행해 설계하는 주된 이유다. 국내도 두 체계를 상호보완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해외 주요국들이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디지털 경제의 기반통화로서 통화 주권과 국제 금융 주도권을 결정짓는 핵심 도구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금융 주도권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서둘러야 할 때다. 적극적인 논의와 신속한 결단이 글로벌 금융 질서에서 주도적 위치를 좌우할 것이다.
송민택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nagaia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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