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2월 1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내려다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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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관세 전쟁'에 불이 붙었습니다.
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관세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발표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 모든 나라에 10%의 기본관세를 5일부터 부과하고, 여기에 국가별로 차등화된 개별관세를 추가한 상호관세를 9일부터 부과하는데요. 충격파는 거셌습니다.
경기 침체 공포, 이른바 'R의 공포'가 확산하면서 글로벌 증시는 직격타를 입었습니다. 기본관세 부과 전날인 4일 글로벌 증시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쇼크' 이후 최악의 하루를 보내야 했죠.
상호관세 부과가 본격화하면 이 충격은 '새 발의 피'가 아니겠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차 관세에 대한 의지를 밝히면서 우려를 키웠는데요. 그는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이건 경제 혁명이고, 우리는 이길 것”이라며 "버텨내라. 쉽지 않겠지만 마지막 결과는 역사적일 것이다. 우리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고 적었죠.
(출처=트럼프 대통령 트루스소셜 캡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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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관세 발표 직후엔 주요국의 보복 관세 대응 시나리오가 현실화했습니다. EU는 7일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25% 관세에 대응하기 위한 보복관세 대상 품목을 확정, 27개 회원국에 제시할 예정이고요. 대상 품목은 9일 회원국 표결로 확정할 방침입니다. 2일의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는 빠진 캐나다는 미국의 25% 자동차 관세에 대응해 미국산 자동차에 25% 맞불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죠. 중국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에 맞서 중국 기준 10일 낮 12시 1분부터 모든 미국산 수입품에 34%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무역 전쟁이 격화일로에 접어들며 경기침체 공포는 더욱 커졌습니다. 이는 증시에 곧바로 반영됐죠.
4일 미 증시는 전날에 이어 뉴욕증시 3대 지수가 일제히 폭락했습니다. 이날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2231.07포인트(-5.50%) 급락한 3만8314.86에 거래를 마쳤고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전장보다 322.44포인트(-5.97%) 떨어진 5074.08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는 전장보다 962.82포인트(-5.82%) 하락한 1만5587.79에 각각 마감했습니다. S&P500지수는 팬데믹 확산 공포가 덮친 2020년 3월 16일(-12%) 이후 5년 만에 일간 기준 최대 낙폭을 기록했죠. 나스닥 지수는 지난해 12월 16일 고점 이후 20% 넘게 하락하면서 기술적 약세장에 진입했는데요. 3∼4일 이틀간 낙폭만 11%를 넘었습니다.
월가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수(VIX)는 이날 45.61까지 오르면서 2020년 4월 이후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죠.
코스피 역시 폭락 장세를 이어갔습니다. 우리 시간으로 7일 코스피는 개장과 함께 하락을 시작, 5.57% 급락한 2328.2에 마감했는데요. 오전 한때 사이드카(5분간 프로그램 매매 중단)도 발동됐지만, 지수 급락을 막긴 역부족이었습니다.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글로벌 증시가 급락한 지난해 8월 5일 '블랙 먼데이' 이후 처음입니다.
녹아내린 글로벌 증시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 역시 곳곳에서 표출됐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여유로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는 6일 트루스소셜에 골프 라운딩을 즐기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게재했는데요. 이 영상이 언제 촬영됐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정치전문매체 더힐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며칠 새 골프 행사에 연달아 참석하고 있습니다. 4일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에 위치한 트럼프인터내셔널골프클럽에 도착했으며, 전날에도 마이애미 트럼프도랄골프장에서 열린 LIV 골프대회 만찬에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죠.
트럼프 행정부의 2일 상호관세 발표 이후 3~4일 단 이틀간 뉴욕 주식시장에서 빠진 시가총액은 6조6000억 달러(한화 약 9667조 원)에 달하는데요. 이 시점에서 골프공을 날리는 모습을 보란 듯 공개하며 여유를 과시한 겁니다.
코스피가 미국의 상호관세 여파로 충격에 휩싸이며 5% 넘게 폭락했다. 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니터에 코스피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37.22포인트(5.57%) 내린 2328.20에 거래를 마쳤다. 지수는 106.17포인트(4.31%) 내린 2359.25로 장을 시작한 뒤 4~5%대 급락세를 이어갔다. 코스닥 지수도 전장보다 36.09포인트(5.25%) 내린 651.30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시장에서는 미국발 무역 충돌 우려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편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33.7원 오른 1467.80원에 장을 마쳤다. 코로나19 이후 5년여 만에 최대폭 상승이다. (신태현 기자 holjja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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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는 5일 이탈리아 극우 정당 '라 리가'에서 개최한 '자유의 용기' 행사에 화상으로 참석해 미국과 유럽 간 '무관세'가 적용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는 "사실 이미 동맹 관계에 있지만 미국과 유럽 간에 더욱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기를 희망한다. 유럽과 미국이 모두 합의해 이상적으로는 관세를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 유럽과 북미 간에 실질적인 '자유무역지대'를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는데요. 관세와 같은 무역 장벽이 아닌 자유무역을 옹호한 겁니다.
사실 이는 깜짝 발언이 아닙니다. 머스크는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때부터 미국과 유럽 간 관세가 없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는데요.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표 이후엔 별다른 발언 없이 침묵을 이어온 그입니다. 이에 CNN,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언론은 머스크의 이번 발언이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반하는 견해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했죠.
머스크가 이 같은 발언을 내놓은 건 결국 '돈' 때문이 아니겠냐는 분석입니다. 실로 머스크의 사업 역시 타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트럼프의 관세 부과 발표로 타격을 입었는데요. 테슬라 주가는 관세 발표 이후 이틀간 약 17% 폭락했습니다. 머스크의 개인 자산도 309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5조 원이 줄어들었죠.
테슬라로선 위기입니다. 안 그래도 부진한 중국 내 판매량이 더욱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깊어지고 있는데요. 미중간 무역 갈등이 격화하면서 특히 경쟁이 치열한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직접적인 보복 관세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거죠. 테슬라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20%에 달합니다.
테슬라 광팬마저 회의적인 의견을 낼 정도였습니다.
월가의 대표적인 테슬라 낙관론자 웨드부시 증권의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는 이날 보고서를 내고 테슬라 목표가를 기존 550달러에서 315달러로 약 43% 하향 조정했습니다. 그는 지난 4년간 테슬라 투자의견으로 '매수'를 제시하면서 강세를 전망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브스는 머스크가 소비자로부터 반감을 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테슬라는 전 세계에서 대표적인 정치적 상징이 됐다"며 "현재 테슬라는 자체적으로 야기한 브랜드 문제로 인해 전 세계 미래 고객 기반의 최소 10%를 잃거나 파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는데요. 다만 "이는 보수적인 추정치일 수 있다"고 부연했죠.
테슬라 제조공장이 중국 상하이에 있는 것을 두고선 "이로써 중국 소비자들은 BYD(비야디), 니오, 엑스펑 등 중국산 전기차를 더 살 것"이라고도 내다봤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11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테슬라 차량에 앉아 언론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D.C./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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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의 불협화음은 최근 속속 포착되고 있습니다.
머스크는 5일 트럼프 행정부에서 관세 정책의 핵심 역할을 맡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도 공개 저격했는데요. X(옛 트위터)에서 한 이용자가 '나바로는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다'고 쓴 데 대해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는 좋은 게 아니라 나쁜 것"이라며 "두뇌(brains)보다 자아(ego)가 큰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죠. 또 다른 X 이용자가 나바로의 통상정책이 옳다고 쉴드(?)를 치자, 머스크는 "그는 아무것도 만들어 본 적이 없다"고 응수했습니다. 사실상 트럼프의 통상 정책에 대한 비판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풀이됩니다.
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초 각 회의에서 여러 부처 장관이 머스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자,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을 따로 불러 "머스크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고요. 2일엔 트럼프 대통령이 측근들에게 머스크가 정부효율부(DOGE) 수장직에서 곧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백악관과 머스크 측은 부인했지만, 조기 사임설은 끊이질 않고 있죠.
다만 머스크가 트럼프 행정부와의 동행을 마치더라도, 이들의 동업은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는 이날 59억 달러(약 8조6470억 원) 규모의 미국 국방부 위성 발사 계약을 수주했는데요. 매체는 머스크의 로켓 회사와 미 정부 간 관계가 깊어지고 있다고 풀이했습니다.
[이투데이/장유진 기자 (yxxj@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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