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매년 봄철이면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왕의 무덤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조 때에는 산불로 동구릉 문종의 현릉이 불탔다. 그날은 마침 한식날이어서 제례 준비를 하던 중에 불이 났다. 당시 현릉 참봉 정덕장은 “오늘 신시(申時)에 신주(神廚·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수라간)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두 능의 사초가 모두 타고 바람이 세차 아직도 불이 꺼지지 않았는데, 건원릉은 연소되지 않았습니다… 금화군(禁火軍)을 속히 발송하소서”(<선조실록> 선조 29년 3월8일)라고 급히 조정에 알렸다.
현릉은 건원릉 바로 아래에 있는 능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능침 코앞까지 불이 번졌으니 능참봉이었던 정덕장은 얼마나 가슴을 졸였겠는가. 산불이 능침으로 번지지 않도록 나무와 풀들을 제거한 화소(火巢)를 두었어도 속수무책이었다. 자칫 건원릉에도 옮겨붙을 수 있는 상황이라 금화군을 요청하는 전갈이 화급함을 알려준다. 세종 때 지금의 소방청에 해당하는 금화도감을 설치하고 소방대원인 금화군을 배치했다.
산불은 예나 지금이나 큰 재난이다. 조선시대 최대의 산불 피해는 순조 4년(1804)에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서 발생했는데 민가 2600호, 사찰 6곳에다 각종 곡식과 선박 등이 불타고 사망자가 61명에 달했다. 조선시대 산불 발생은 총 63건으로 기록되었다. 그중 통천·고성·양양·강릉·삼척 등 강원도 동해안 지역이 31건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이 경남과 경북이었으며, 특히 4~5월에 가장 많이 발생했다(강영호·김동현 <조선시대 산불>). 근래의 산불 상황도 예전과 유사하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가 지구열대화로 바뀌면서 산불 발생 빈도도 높아졌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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