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달리기가 필요한 시간' 출간
권은주 감독이 지난달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도쿄마라톤에서 달리고 있다. 본인 제공 |
'제일 잘 뛰는 사람.'
국가대표를 지낸 권은주(47) 마라톤 감독은 선수 시절, 이 타이틀에 욕심을 냈다. '기대주' '신데렐라' 같은 단어들. 1997년 춘천국제마라톤 대회서 2시간 26분 12초로 한국 신기록을 세우면서 언론이 붙여준 수식어를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 몸이 쉬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무시했다. 그 결과 잦은 부상으로 중요한 경기에 참여하지 못했다. 초청받은 보스턴 마라톤대회 직전엔 수술로,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2002년 아시안게임에선 통증으로 기권했다. "선수 시절 풀코스로 완주한 대회가 6번 정도"에 그쳤다. 한국 여자 마라톤 마의 벽이라 불리던 2시간 30분을 깨며 21년간 한국 기록을 보유했던 화려한 이력서의 뒷면이다.
권은주 감독은 이제 더 이상 달리기 기록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가 찾은 자신만의 속도는 1㎞를 5분 정도에 달리는 것이다. 본인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러닝 열풍으로 마라톤 대회 참가 신청이 유명 아이돌 콘서트 티켓처럼 빠르게 마감되는 요즘이다. 온라인엔 기록 단축 정보가 넘친다.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멀리 갔던 권 감독만큼 이 비법을 알려줄 적임자가 있을까. 그런데 의외로 그가 운영하는 러닝클래스에선 '빨리 뛰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최근 전화로 만난 권 감독은 "남과 비교 때문에 '더 빨리, 더 많이'를 바란다면 끝내 자신을 찾아오는 것은 잦은 부상과 낮은 자존감"이라며 "기록 단축보다는 자기 페이스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핵심은 자신만의 속도라는 것이다. 열두 살 때부터 달리기 시작해 30년 넘게 달려온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다.
달리기의 아이러니... "힘든데 힘이 나"
그는 은퇴하고 나서도 여전히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달린다. "몸은 힘들어도 뛰고 나면 에너지를 받는다"는 달리기의 장점 때문이다. 활력과 성취감, 건강은 덤이다. 힘든데, 힘이 나는 '달리기의 아이러니'다.
그의 주변에도 달리기로 우울증과 무기력에서 벗어난 사례들이 많다. 비교와 경쟁의 시대, 휴대폰을 내려놓고 오롯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이라서일 것이다. 최근 출간한 '인생에 달리기가 필요한 시간'에도 달리기라는 운동이 어떻게 삶에 지혜를 뿌리내리게 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담았다. 그는 "달리기를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문제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달리기를 '움직이는 명상'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며 "머릿속이 복잡할 땐 달리기를 하라"고 말했다.
"할머니 돼서도 달리고 싶어"
권은주 감독. 본인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권 감독은 최근 러닝 인구가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달리기가 생활 체육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했다. 인프라 부족과 '러닝 크루'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 때문이다. 달리기 전문가들은 '러닝 메이트'를 권한다. '같이 가면 멀리 간다'는 생각에서다.
실례로 최근 반포종합운동장에서는 러닝 크루가 '4인 이하, 2m 간격'으로만 뛸 수 있도록 했다. 러닝 크루의 존재가 다른 이의 운동을 방해하거나 위협적이라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다. 관리자들이 경광봉을 들고 간격을 유지하라며 러닝 크루를 쫓아다니는 웃지 못할 풍경도 생겼다.
막 달리기 시작한 초급 러너에 대한 조언
1. 일주일에 2번 달리기는 꼭 지킨다. 2. 무조건 달린다는 생각보다 걸어도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출발하자. 3. 타고난 차이를 인정하고 비교는 금물이다. 4. 혼자보다는 주위 친구나 동료들과 함께 달려본다. 5. 나에게 선물을 준다. 6. 전문가에게 올바른 방법을 배워보는 것도 좋다.
인생에 달리기가 필요한 시간·권은주 지음·트랙원 발행·272쪽·1만7,800원 |
·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