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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목)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 6주기… ‘45년 항공산업’ 리더십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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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통합 앞두고 조양호 선대회장 재조명

45년 항공 외길 전문가… 위기 속 빛난 선견지명

오일쇼크.외환위기에도 과감한 투자

글로벌 항공동맹 스카이팀 창설 주도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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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의 타계 6주기를 맞아, 대한민국 항공산업이 중대한 전환기를 맞이한 가운데 고인의 선견지명과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극복과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라는 항공 업계 재편의 흐름 속에서, 고인이 남긴 업적은 향후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는 한진그룹 창립 8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하여 45년 이상을 항공·운송 사업에 매진한 조양호 선대회장은 국내외를 통틀어 보기 드문 항공·운송 분야의 베테랑으로 손꼽힌다.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 전반을 경험하며 실무 역량까지 갖춘 그는 항공·운송 시스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경영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의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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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전문가들은 그의 전문성과 미래를 예상하는 통찰력,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한 결단력이 조양호 선대회장을 국제 항공 업계의 주요 인사로 발돋움시킨 핵심 동력이었다고 분석한다.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중요한 변혁기를 앞둔 현재, 그의 경영 행보는 앞으로 국내 항공 업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잇따른 위기를 기회로… 탁월한 경영 능력 발휘

조양호 선대회장이 대한항공에 몸담았던 시기는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라는 전례 없는 위기가 닥쳤던 때였다. 당시 연료비 급증으로 세계적인 항공사들조차 인력 감축에 나서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조양호 선대회장은 선친인 조중훈 창업주와 함께 비용 절감과 동시에 시설 및 장비 가동률을 높이는 전략을 추진했다. 불황 속에서도 항공기 구매 계획을 유지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이는 오일쇼크 이후 중동 시장의 성장과 함께 새로운 노선 확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대한항공의 위기대응 능력도 주목할 만하다. 당시 대한항공은 운영 항공기 대부분을 자체 소유하고 있어, 매각 후 재임차 등의 방식으로 유동성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이는 IMF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2016년 IATA 집행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조양호 회장(뒷줄 왼쪽에서 다섯번째)을 비롯한 위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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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 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에는 차세대 주력 모델인 보잉737-800 및 보잉737-900 기종 27대 구매 계약을 체결하는 대담한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러한 결정에 보잉사는 계약금 인하 및 유리한 금융 조건 제시로 화답했으며, 이는 대한항공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됐다.

2003년 이라크 전쟁과 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9.11 테러 등으로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에 빠졌을 때, 조양호 선대회장은 오히려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삼았다. 에어버스 A380 항공기 구매 계약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의 예측대로 2006년 이후 세계 항공 시장은 회복세를 보였고, 항공사들은 차세대 항공기 확보 경쟁에 나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항공은 선제적인 투자로 적기에 차세대 항공기를 도입할 수 있었다.

스카이팀 창설 주도 및 조인트벤처 추진… 시장 변화에 능동적 대처

항공 시장의 자유화와 경쟁 심화 속에서 조양호 선대회장은 항공사 간 협력을 통한 위기 극복을 모색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항공 동맹체인 ‘스카이팀’ 창설이다. 2000년대 초반 대한항공은 스카이팀 설립을 주도하며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서의 위상을 확립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세계 항공 업계는 항공사 간 동맹체 중심으로 재편되는 추세였다. 이러한 변화를 일찍이 간파한 조양호 선대회장은 2000년 대한항공, 델타항공, 에어프랑스, 아에로멕시코 등 4개 항공사를 주축으로 스카이팀을 공식 출범시켰다.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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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지역 항공사들을 스카이팀 회원사로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신규 회원사들을 위한 업무 표준화 및 기술 자문 등 멘토 역할도 수행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스카이팀은 현재 19개 회원사가 170개국 1036개 도시를 연결하는 거대 항공 동맹체로 성장했다.

하지만 항공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특히 인천공항의 환승 수요 감소는 국내 항공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조양호 선대회장은 강력한 협력 관계를 통한 시너지 창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향후 활성화될 항공사 간 전략적 협력을 대비하여 선제적으로 반독점 면제(ATI) 권한을 확보했다.

이러한 준비를 바탕으로 2018년 5월 출범한 델타항공과의 태평양 노선 조인트벤처는 치열한 국제 항공 시장 경쟁을 헤쳐나가는 중요한 발판이 되고 있다. 2018년과 2019년 대한항공의 실적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제 항공 업계 리더십 발휘… 대한민국 항공산업 위상 높여

조양호 선대회장은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와 깊이 있는 실무 지식을 바탕으로 국제 항공 업계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 세계 120개국 287개 민간 항공사가 회원으로 가입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IATA의 최고 정책 심의 및 의결 기구인 집행위원회(BOG) 위원과 더불어, 집행위원회 위원 중 별도 선출된 전략정책위원회(SPC) 위원으로서 IATA의 주요 전략 및 정책 방향, 연간 예산, 회원사 자격 등 주요 사안 결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그의 위상은 ‘항공 업계의 UN 회의’라고 불리는 IATA 연차총회를 2019년 사상 최초로 서울에 유치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서울 IATA 연차총회는 대한민국 항공산업이 국제 사회에서 변방이 아닌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음을 널리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안전에는 타협 없다”… 안전 최우선 경영철학 확립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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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선대회장은 항공사의 안전 운항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우선 가치로 강조하며, ‘안전은 대한항공의 핵심 가치’라는 신념을 전 임직원에게 각인시켰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최상의 운영 체계’ 구축을 위한 핵심 실천 사항으로 ‘절대 안전 지속’을 명시하고, 안전 수준 향상을 위한 노력을 꾸준히 이어왔다.

대한항공은 안전 부문에 연간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이는 직원 교육 훈련, 최신 장비 도입, 해외 안전 관련 세미나 참석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

이러한 철저한 안전 관리 시스템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으며, 항공 안전의 중요한 지표인 보험요율은 세계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항공 선진국인 미주, 유럽 지역의 주요 항공사들보다 낮은 수준이다.

항공 사고 및 안전 관련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항공 보험요율은 항공 안전 수준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며, 대한항공의 보험요율 하락은 곧 ‘더 안전한 항공사’라는 것을 의미한다. 조양호 선대회장의 끊임없는 안전 강조는 대한항공이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토대가 되고 있다.

기본과 합리 중시하는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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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한 대한민국 항공산업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라는 새로운 변화를 앞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양호 선대회장이 강조했던 기본에 충실한 경영 철학과 합리적인 리더십은 국내 항공 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그는 경영자를 시스템을 구축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며, 모든 구성원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시스템 경영론’과 고객과의 접점인 현장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최고의 항공사로 평가받는 길이라는 ‘고객 중심 경영론’ 등 시대를 초월하는 경영 철학을 제시했다.

조양호 선대회장이 대한항공을 세계적인 항공사로 성장시킨 업적과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킨 경영 노하우는 대한민국 항공산업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다.

김상준 기자 k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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