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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경기 남양주로 떠난 봄맞이...한음골 돌담길 따라 느긋하게 봄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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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아득하게 품은 수종사와 낭만 가득 능내역
다산유적지에서 놀며 배우는 실학
슬로시티 조안면 들렀다 한옥카페 고당까지


남양주는 봄 여행지다. 물안개 아득하게 피는 북한강을 따라가다 보면 말랑말랑하고 포근한 봄을 만날 수 있다. 돌담길을 걷고 강변 공원을 산책하고 고즈넉한 절 집 마당에서 아득한 풍경을 내려다 보자. 옛 역사의 철로를 따라 거닐어 보는 건 어떤가.

남양주 한음골의 고택 ‘박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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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을 따라 남양주로

오늘 작업실에서 곧 책이 나올 작가님의 원고를 읽다가 이런 구절이 나와 오랫동안 눈이 머물렀다. “가까운 이들에게 더 다정하리라. 그저 그런 인연엔 무심하리라. 그렇게 낭비 없는 마음으로 두루 관대하리라.” 점심 시간에는 잠깐 시간을 내 페이융의 『금강경 마음공부』를 읽는데 또 이런 구절이 나왔다. “어떻게 하면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초조해하지 않고 편히 머물 수 있을까? 첫째, 지금 하고 싶은 일을 바로 하라. 둘째,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껴라.” 생각해보면 좋은 삶을 만드는 것은 얼핏 쉬운 일 같다. 가까운 이들에게 다정하고, 그저 그런 인연에는 무심하고,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금의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되는 것이다.

아, 참 간단하구나. 그래서 매일 아침 내가 매일 발행하는 뉴스레터에 이렇게 썼다. “내겐 현재가 곧 꿈이자 사랑이고 열망이다.” 뉴스레터를 예약 발송하고 남양주 방면으로 차를 몰았다. 도로 끝에서 동이 터오고 있었다. 내가 사는 파주에서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를 타고 구리와 팔당을 지나 미사리 강변을 따라 가면 양평과 홍천으로 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나는 그 표지판 아래를 지나며 ‘지금쯤 북한강에는 물안개가 아지랑이처럼 피겠지’ 하며 핸들을 잡았다.

(위) 옛 분위기가 남아있는 남양주 능내역 실내 (아래) 한강변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물의 정원. 한음골에서 물의 정원은 지척이다. 아름다운 습지 공원이다. 자전거 도로와 함께 강변 산책로, 물향기길, 물마음길, 물빛길 등의 산책로와 전망 데크가 조성돼 있다. 자전거를 타기에도 좋고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강변을 따라 조성된 물마음길과 강변 산책길은 전망대와 휴식 공간이 곳곳에 설치돼 북한강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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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 방면으로 접어드니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다. 오른편으로 북한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새털구름이 가볍게 떠 있는 하늘, 수면에 닿은 햇살이 사금파리처럼 빛난다. 남양주는 자동차로는 한 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어 당일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운치 있는 간이역인 능내역도 돌아보고 고즈넉한 산사 수종사도 거닐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물의 정원에서는 유유히 흘러가는 남한강을 바라볼 수도 있다.

한음골, 역사가 숨 쉬는 돌

한음골이라는 곳도 가볼 만하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한음골은 ‘오성과 한음’으로 잘 알려진 한음 이덕형 선생이 임진왜란을 수습한 후 낙향해 일생을 보낸 곳이다. 당시 한음 선생이 집 앞에 심었던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아직도 집터를 지키고 있다. 한음골이 유명해진 건 ‘돌담’ 때문이다. 예부터 마을 주민들이 집을 짓거나 밭을 갈면서 나왔던 돌들을 모아서 담을 쌓곤 했는데, 이걸 관광자원으로 활용한 것이다. 모양도 다르고 색도 다른 돌들이 흩어져 있으면 보잘것없지만 담으로 만들어놓고 보니 그럴 듯한 돌담길이 완성됐다. 돌담은 ‘박소재’라는 한옥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다. 1949년에 지어졌는데,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한음골 돌담은 굽이지고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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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길에만 들어서면 걸음은 느려진다. 길은 굽이지고, 담은 낮다. 이 마을의 돌담은 특별하다. 돌마다 손때가 묻어 있다. 누군가는 산에서, 누군가는 개울가에서 주워온 돌을 한 개씩, 한 개씩 쌓았다. 접착제 하나 없이 돌끼리 기대며 살아 있는 듯한 담이다. 바람 부는 날이면 담 틈 사이로 낙엽이 스며들고, 햇살 좋은 날이면 고양이가 몸을 말린다. 마을 어르신 한 분이 말했다.

“처음엔 골목 정리하려고 시작했지. 근데 하다 보니까 이게 우리 마을 얼굴이 됐어.”

돌담 사이 좁은 길을 걷다가 느닷없이 열린 마당을 마주쳤다. 봄의 텃밭에는 가지와 고추로 보이는 모종이 심겨져 있다. 한쪽 평상에 누군가 벗어놓은 밀짚모자를 보며 문득 어릴 적 여름을 보낸 외갓집이 떠올랐다. 이곳엔 안내판이 없다. 사진 찍으라고 마련된 포인트도 없다. 볼거리로 만든 골목이 아니라,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살아 있는 거리다. 그래서 더 좋다. 계절은 돌담 위를 거닐며 발자국을 남긴다. 봄이면 들꽃이 기웃거리고, 여름이면 담벼락 위로 풀들이 넘실댄다. 가을이면 단풍이 내려앉고, 겨울엔 그 담 위에 눈이 소복이 쌓인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봄이면 다 같이 모여 비바람에 무너진 담을 다시 세운다고 한다.

(위에서 부터) 수종사에서 바라보는 풍경, 수종사와 삼정헌,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능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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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면 돌마다 생긴 모양이 전부 다르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이 말이다. 까다로운 돌도 있고 둔한 돌도 있다. 제멋대로 굴러가다 여기에 톡 박힌 듯 보이는 돌도 있다. 담을 쌓는 일은 협업이고, 대화고, 인내다. 그 각각의 돌들이 어울려 하나의 담이 만들어진 것이다. 담 사이에 핀 꽃 하나도 그냥 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정성껏 심은 것이다. 담에 걸린 풍경 하나, 놓인 의자 하나, 그 옆의 작은 장독 하나도 주민의 손이 닿은 자리다. 그것은 또 마음이기도 해서 골목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하다.

수종사, 한강을 아득하게 품은 풍경

운길산 중턱에 날아갈 듯이 자리잡은 수종사는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종소리를 낸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수종사가 아름다운 이유는 절에서 바라보는 풍경 때문. 멀리 한강이 아득하게 내려다보인다. 이 풍경을 서거정은 “동방 사찰 중 제일의 전망”이라고 했다. 수종사에는 세조가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두 그루 있다. 나이가 무려 500살이다. 해탈문 뒤에서 해탈한 듯 의젓하게 서 있다. 울퉁불퉁 우람하고 잘생겼다. 한 그루는 높이 35m, 가슴둘레 2m, 또 한 그루는 높이 25m, 가슴둘레 1.2m에 달한다. 절 마당 한쪽에는 통유리로 벽을 세운 삼정헌이 있다. 삼정헌은 무료 찻집이다. ‘시와 선, 차’가 하나 되는 곳이라는 뜻이다. 누구나 다실에 들러 차를 마실 수 있다. 다구가 일체 갖춰져 있다. 스스로 보온병의 찻물로 차를 마신 후 설거지를 해야 한다.

(위) 옛 역사의 운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능내역 (아래) 실학박물관에 있는 다산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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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내역, 시간이 멈춘 듯 서 있는 간이역

한강을 따라 철로가 지났다. 팔당역에서 운길산역까지 경춘선이 따라 흘렀다. 이제는 폐철로가 됐지만 말이다. 2008년 12월 팔당역부터 국수역까지, 다음 해엔 용문역까지 복선 전철이 놓이면서 팔당-능내-양수역을 잇는 강변 철로가 폐선이 됐다. 먼지만 풀풀 쌓여가며 자칫 사라질 뻔했던 능내역이 다시 붐비기 시작한 것은 자전거길이 생기고 난 다음부터다. 라이더들 사이에 강을 따라가는 경치가 기막힌 곳으로 금세 소문이 났고 주말이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헬멧을 쓴 라이더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산책을 즐길 수도 있다. 길은 산모퉁이를 따라 슬그머니 휘어지기도 하고 쭉 뻗어나가다 소실점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북한강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라서 조망도 좋다. 팔당역에서 철로를 따라 걷다 보면 걸음은 어느새 능내역에 닿는다. 능내역은 예쁜 초록색 건물이다. 시간이 멈춘 듯 옛 모습 그대로 서 있는데, 운행했을 당시의 모습을 살려 역사도 재단장했다. 폐역 분위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페인트칠을 새로 했고 역사 안은 옛 능내역 대합실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실학박물관에 전시된 다산의 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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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용되던 열차 시간표와 운임표도 붙여 놓았다. 역 담벼락에는 여행을 떠나온 이들이 교복과 교련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걸어 놓았다. 나란히 선 색색의 나무 의자들도 잔잔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역사 옆에는 수십 년간 중앙선 기찻길을 달렸던 기차가 카페로 변신해 손님을 맞고 있다.

다산 유적지, 놀면서 배우는 실학

능내역에서는 마현마을 다산 유적지가 가깝다. 남양주는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 다산의 고향. 그는 1762년 한강의 두물머리가 환히 바라보이는 마현마을에서 태어났다. 마현마을에는 다산의 생가 여유당을 비롯해 다산의 묘와 다산문화관, 실학박물관 등이 모여있는데, 특히 실학박물관은 아이와 함께 한 가족 여행자라면 꼭 한번 들러 볼 만하다.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둬도 된다. 회화와 그림, 애니메이션, 영상 등 아이들이 살펴볼 만한 다양한 자료가 흥미를 돋운다. 실학박물관 건너편에는 다산의 생가인 여유당이 서 있다. 1925년 대홍수 때 떠내려간 것을 1975년에 복원한 것이다. 여유당(與猶堂)은 1800년 다산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서 살 때 지은 당호다. ‘여유당’이란 이름엔 ‘살얼음 건너듯이 조심하고 경계하며 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여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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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75년의 일생 중 10여 년의 벼슬살이, 18년의 귀양살이를 제외하고는 50년 가까운 세월을 이곳에 머물렀다. 마을 앞에 펼쳐진 강변 풍광을 읊은 ‘환소천거’라는 그의 시가 있다.

“서둘러서 고향 마을 도착해 보니 / 문 앞에는 봄 강물이 흐르는구나. / 기쁜 듯 약초밭둑에 서고 보니 / 예전처럼 고깃배가 보이는구나. / 꽃이 만발한 숲 사이 초당은 고요하고 / 소나무 가지 드리운 들길이 그윽하네. / 남쪽 천 리 밖에서 노닐었지만 / 어디 간들 이 좋은 언덕 얻을 거냐.” -다산 정약용



슬로시티문화관에서 ‘느린 마을’ 조안면을 만나다

조안면은 수도권에서 처음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수려한 자연, 다산 정약용 생가와 박물관 등 전통 유산, 깨끗한 물과 토양이 어우러져 지속 가능한 생태도시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안이 슬로시티로 지정된 가장 큰 원인은 서울과 가깝기 때문이다. 한강변에 위치한 이 마을은 식수원 보호 때문에 각종 규제에 묶여 개발되지 못했다. 공장도 들어서지 못했고, 농약도 사용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규제가 자연과 문화를 보호하는 결과로 나타났고, 세월이 흘러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조안면은 지난 2010년 11월 영국 스코틀랜드 퍼스에서 열린 국제슬로시티연맹 이사회에서 국제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시티라이프

슬로시티 전시관


슬로시티 조안을 이해하기 위해 찾아야 할 곳이 있다. 먼저 물의 정원 건너편에 자리한 슬로시티문화관이다. 이곳은 조안면을 소개하는 홍보관 역할을 한다. 슬로시티의 개념과 세계 슬로시티 인증 마을, 조안면의 특징 등을 살펴볼 수 있으니 꼭 한번 들러보자.

남양주를 다녀와 아침에 읽던 작가님의 원고를 계속해 읽었다. 그리고 이 구절 앞에 오래 서성였다.

“오십 줄에 접어들게 될 이 나이가 되어서도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 이런 생각이 절로 들게끔 하는 멋진 사람들을 보면 넋을 놓고 흠모란 걸 한다. 그런데 가만 보니 대체로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하루하루를 검박하고 즐겁게 살려고 하고(오늘을), 넉넉한 품으로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려 하는 것이다(누군가와 함께). 마지막으로는 영원히 살 것처럼 너무 아둥바둥하지 않고, 때론 흔들릴지언정 금세 평온을 되찾는다는 것(죽음을 기억하며)이다. 이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거 같은데 70세에 독학으로 화가의 인생을 시작한 미국의 모지스 할머니(Grandma Moses)가, 한국의 70대 유튜버 ‘밀라논나’, 104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그렇다. 그리고 그들의 멋진 삶을 관통하는 맥에는 언제나 돈, 명예, 권력이 아니라 앞서 말한 대로 ‘오늘’, ‘함께’, ‘죽음’이 있다.”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기 좋은 물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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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도 좋고 동남아도 좋고, 유럽도 좋지만 오늘 당장엔 남양주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뭔가 어지럽거나 심사가 뒤틀릴 땐 아침 일찍 떠나보자. 지금 물안개가 필 때다. 아득히 피어 오르는 물안개는 해가 뜨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물안개 앞에서 “현재가 곧 꿈이자 사랑이고 열망”이라는 걸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남양주 여행 정보

(좌) 개성집 (우) 옥천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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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냉면의 냉면이 유명하다. 모밀에 감자가루를 적당히 배합해 만든 면발이 튕길 듯 탱탱하다. 양지와 엉덩잇살로 우려낸 육수를 살짝 얼려 내놓는데 그 맛이 시원하고 담백하다. 편육과 돼지고기를 양파와 함께 다져 뭉친 완자도 맛있다. 적당한 기름기가 돌아 부드럽고 촉촉하다. 개성집은 이북 음식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부부가 10여 차례 다녀간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북식 만두와 오이소박이 냉국수가 주메뉴다.

한옥 카페 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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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여행의 마무리는 한옥 카페 고당이다. 88칸 전통 사대부 한옥을 커피집으로 개조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널찍하고 날렵한 처마의 한옥이 서 있다. 그리고 한옥에 은은한 커피향이 감돈다. 댓돌에 신발을 벗어두고 사랑방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아니 ‘가비차’라고 해야 어울릴 듯싶다. 양반다리를 하고 오래된 탁자에 앉아 마시는 커피 맛이 묘하다. 커피를 즐겼다는 고종의 기분이 이랬을까. 창살에 어룽대던 햇살 무늬가 커피잔으로 번진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74호(25.04.0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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