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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목)

화마가 할퀸 주왕산, 봄꽃 피었건만 향기 대신 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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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면적 3분의 1 피해…상춘객 맞이 못해

흙에 수분 날아가 푹푹 꺼져…복구에 25억 투입

7일 상공에서 내려다 본 주왕산국립공원 산불 피해 모습. 나무 잎까지 모두 탔다. 국립공원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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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경북 청송군 주왕산국립공원. 벚꽃과 개나리가 활짝 피었지만 꽃내음 대신 매캐한 탄내가 났다. 철제 건축물은 사납게 일그러졌고 여기저기 그을린 외판에 바퀴는 녹아 없어진 차량이 서 있었다. 지난달 22일 발생한 의성 산불은 25일 주왕산국립공원 안에 번져 전체 면적 3분의 1인 3260ha(헥타르)가 피해를 입혔다. 국립공원 역대 산불 피해 중 최대 규모로 역대 두 번째로 피해가 컸던 2023년 지리산국립공원 화재 보다 피해 면적(128ha)이 25배 넓다. 탐방로 통제로 상춘객이 없는 봄을 맞게 된 주왕산 산불 피해 현장을 잔불 정리 이튿날 찾았다.

●“서커스 하듯 불길 빠져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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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활활 타오르는 원 안을 뛰어넘는 서커스 아시죠. 차에 물을 잔뜩 뿌리고 그 원을 통과하는 심정으로 20분간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가야 했습니다.”

청송군 주민들은 지난달 25일 불길이 번지던 화재 현장 모습을 아직도 믿기 어렵다. 군과 읍에서 재난문자를 받았지만 화마가 한시간 만에 민가까지 덮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송군 너구마을 이장 권성환 씨(65)는 주민들을 대피시킨 뒤 다시 마을에 돌아왔다가 생전 보지 못한 불기둥이 산에서 솟구쳐 오르는 모습을 봤다. 권 씨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불길에 둘러싸인 채 감으로 운전해야 했다”며 “익숙하지 않았던 길이었다면 빠져나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호경 주왕산국립공원사무소장은 “산불은 보통 한시간에 2, 3km 속도로 번지는데 당시에는 시속 7, 8km 속도로 매우 빨리 확산됐다”고 말했다.

화마가 덮쳐 뼈대만 남은 차량들. 국립공원공단 제공·청송=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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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는 토양의 수분이 모두 날아가 약한 바람에도 흙먼지가 날리고 땅이 푹푹 꺼졌다. 소나무 등 침엽수를 중심으로는 뿌리부터 기둥까지 모두 검게 그을려 만지면 숯검댕이 잔뜩 묻었다.

●25억 투입해 연내 복구… “진화장비 확충을”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들이 주왕산국립공원 산불 피해지역의 성분 분석을 위해 토양을 채취하고 있다. 청송=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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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는 피해 수종의 높이와 둘레를 재거나 잔여 유기물을 측정하기 위한 토양 채취 등 기초 조사가 한창이었다. 국립공원 내에 산불 피해가 발생하면 국립공원공단은 복구에 앞서 피해 수종과 규모 등을 정밀하게 조사한 뒤 어떤 방식으로 복구할지 결정한다. 피해 수준이 경미하고 토양에 유기물이 충분히 남아 있다면 별도 복구 조치를 하지 않고 자연 복원에 나서지만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면 인근에서 종자를 채취해 뿌리는 등 인공적으로 복원한다. 명현호 국립공원연구원 기후변화센터장은 “주왕산국립공원 내 산불 피해지 중 18% 정도가 인공 복원이 필요한 심각한 수준으로 판단된다”며 “정상부 위주로 피해가 크다”고 말했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들이 기둥에 구멍을 뚫어 피해 수종의 나이를 측정하고 있다. 청송=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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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엽수와 활엽수의 피해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새까맣게 탄 소나무와 달리 참나무는 기둥 아래 부분만 그을리는 등 비교적 피해가 적았다. 활엽수는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어 불길이 나무 기둥을 타고 오르는 대신 땅을 따라 약하게 번진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주왕산국립공원 수목 비율은 활엽수 61%, 침엽수 34% 수준이다. 천년고찰 대전사도 활엽수 덕에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립공원공단은 탐방로와 난간 재정비 등 총 25억 원을 투입해 연내 공원을 복구할 계획이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공단 소유 산불 진화 헬기가 전국에 단 1대 뿐이라서 이번 산불때도 지리산을 진화하느라 주왕산에 제때 투입하지 못했다”며 “3대 정도를 유지한다면 전국에서 1시간 내 도착해 신속하게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의성과 청송 등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온실가스 366만t이 배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공원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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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국립산림과학원은 이번 대형 산불로 이산화탄소 324.5만t, 메탄 27.2만t, 아산화질소 14.3만t 등 온실가스 366만t이 배출된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2022년 기준 산림에서 흡수한 온실가스 순흡수량 3987만t의 약 9.2%에 해당하는 양으로, 중형차 3436만 대가 서울과 부산을 왕복할 때 배출하는 양과 같다.

청송=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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