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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방 대법원 “적성국 국민 추방 전에 재판 거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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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엘살바도르 테러감금센터(CECOT) 교도소에서 경찰이 수감자 감옥 앞 경비를 서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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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성향이 다수인 미국 연방대법원이 이민자들을 추방하는 데 18세기에 제정된 전시법을 사용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추방 전에 법정 공판을 거쳐야 한다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전시법에 의거한 추방 조처 자체에 긴급 제동을 걸었던 하급심 판결을 대법이 절차적 문제를 들어 사실상 뒤집은 셈이다.



8일 미국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전쟁 중 적국의 국민들을 구금·추방할 수 있는 ‘적성국 국민법’(Alien Enemies Act)을 동원해 필요 서류 미비 이민자들을 추방한 데 대해 임시 금지 명령을 내린 하급심 법원의 판결을 5 대 4로 취소했다. 대법원은 정부가 전시에 준하는 상황에서만 발동하도록 돼 있는 적성국 국민법을 적용한 것 자체가 옳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법리 판단을 피하고, 대신 법원 관할권을 문제 삼았다. 추방 임시 금지 명령을 내린 워싱턴 법원이 아닌, 관할지인 텍사스의 법원에서 다룰 문제라는 것이다. 이 판결로 인해, 추방 중단 명령을 내렸던 워싱턴디시(D.C.) 연방법원의 제임스 보즈버그 판사는 더 이상 이 사안을 다룰 수 없게 됐다.



대법관들 사이에서 찬반은 극명하게 갈렸다. 특히 진보 성향 대법관 3명 모두 강한 반대 의견을 냈다.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별도 의견에서 “미국 대통령이 수세기 전의 전시법을 적용해 사람들을 악명 높은 외국 감옥으로 보내고 있는데도 대법이 하급심 명령을 서둘러 폐기했다”고 비판했다.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법치를 약화시키려는 정부에 보상해준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총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해 보수가 6명으로 보수 우위다. 다만 대법관 9명 모두 미국에 구금된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이 추방 전 사전 통지를 받아야 하며 이의 제기 절차를 밟았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베네수엘라의 갱단 ‘트렌 데 아라과’(Tren de Aragua)의 미국 내 활동을 “침공”으로 규정하고 전시법에 따라 추방을 추진했다. 보즈버그 판사의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130명 이상의 베네수엘라인들이 사전 통보 없이 엘살바도르의 감옥으로 강제 추방됐다. 미 당국은 이들 중 상당수가 미국 내 전과 기록조차 없었다고 인정했다. 합법적으로 미국 체류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이 ‘실수로’ 추방된 경우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대법원이 국경을 보호하고 가족과 국가를 보호하는 결정을 내려 법치를 바로 세웠다”고 썼다.



다만 대법원은 정부가 “충분한 시간 내에” 적성국 국민법에 따른 추방 대상인 점을 알리고 법정에서 항변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다짜고짜 혐의만으로 외국 교도소로 추방할 순 없다는 이야기다. 뉴욕타임스는 “이 판결로 트럼프 행정부가 적성국 국민법을 사용하는 방식에 중대한 제한을 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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