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 나이로 세상 떠나… 주민들 추모제 열어
유족 "고인 바람 대로 어려운 이웃 위해 써 달라"
권호석(왼쪽)씨가 생전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최훈식 장수군수에게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장수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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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장수군에서 '거리의 천사'로 알려진 권호석씨의 유족이 부의금 일부를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전달했다.
장수군은 8일 "권씨 유족이 취약계층을 위해 써달라며 성금 500만 원을 기탁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권씨는 1969년부터 최근까지 50여 년간 전국 축제 현장을 돌며 쓰레기를 주웠다. '서로 서로 양보하고 기초 질서 잘 지켜 문화국민 되자'라고 직접 쓴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집게와 비닐봉지만 든 채 거리 곳곳을 누볐다. 아이들이 다 먹은 과자봉지를 길거리에 아무렇지 않게 버리고 가더라도 말없이 따라다니며 주워 담는 게 권씨였다. 주민들은 '청소 할아버지' '거리의 천사'라고 부르며, 그를 볼 때마다 감사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권씨가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던 1960, 70년대에만 해도 그를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환경보호'라는 문화가 생소해 권씨를 되레 언짢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그럼에도 권씨가 아랑곳하지 않고 수십 년간 묵묵히 봉사하다 보니 그를 응원하는 이들이 점차 늘기 시작했다. 권씨 아들은 "아버지가 열세 살 때 6·25전쟁이 발발해 군 입대를 자원했지만, 나이가 어려 들어가지 못했다"며 "어린 나이에도 '이 한 몸 바쳐 조국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을 정도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각별하셨다"고 말했다.
권씨의 선행은 쓰레기 줍기에 그치지 않았다. 겨울에 눈이 오면 주민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바닥을 쓸었고, 폐지 줍기나 농촌일손돕기를 통해 모은 돈은 주변의 어려운 이웃이나 장수 지역 학생들을 위해 해마다 기부했다. 2007년에는 '제3회 초아의 봉사대상' 사회봉사 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받은 상금 1,000만 원을 전액 장학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권씨는 지병으로 투석 치료를 받으면서도 쓰레기 줍기와 농촌일손돕기를 이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권씨의 진심을 이어받아 그가 건강 악화로 쓰러졌을 때에는 그를 대신해 천변과 시장을 돌며 쓰레기를 줍기도 했다. 권씨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고 권호석 어르신을 기리는 장수군민 추모제'도 열었다.
장수= 김혜지 기자 fo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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