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진 필, '자수 매화도 병풍', 1870년대-1930년대, 비단에 자수, 148x381.8cm. /국립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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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도 인연이 있는 듯하다. 해강 김규진 필 ‘자수 매화도 병풍’도 그런 사례다. 지난해 덕수궁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던 ‘한국 근현대 자수전’에 출품된 바로 그 작품. 2018년 ‘대한제국의 미술’전을 준비하며 발굴됐다. 영친왕의 서예 스승이던 김규진이 황실에 헌상한 작품으로, 전시 기획 의도와 잘 맞아떨어졌다. 문제는 소재 파악이 안 된다는 사실.
조그마한 흑백 도판으로 확인한 도록에는 분명 미국 시애틀 미술관 소장으로 기재돼 있었는데 막상 문의하니 그런 작품이 없단다. 한동안 기탁된 적 있지만, 이미 원소장가에게 작품을 돌려줬다는 대답이 왔다. 이메일 주소를 전달받아 연락해보니 주한 미8군 사령부에서 미술공예과장 등으로 일하며 30년간 다양한 한국 문화재를 수집한 로버트 마티엘리씨의 컬렉션이었다. 그는 90대 후반임에도 정정했고, 때마침 소장품 정리를 하려던 중 한국 국립미술관에서 온 연락에 반가워했다.
작품도 빌려줬다. 크레이트(미술품 보관 전용 상자)에서 작품을 꺼내 보았을 때 느꼈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주문 배경과 화가가 확인되는 희소한 왕실 자수 병풍들 가운데서도 단연 최상급이었다. 전시 기간 내내 그를 설득했다. 수십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고, 전화를 걸 때마다 보청기를 찾던 그도 결국 이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되는 데 동의했다.
곧바로 이 사실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알렸다. 그의 컬렉션 가운데는 우리 미술관이 수집하기 어려운 고미술품도 다수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미 그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던 재단 역시 구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연구단을 미국에 파견했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문화재를 반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고객 장부를 비롯해 박수근의 연하장과 전시 자료 등 60여 점을 기증받게 됐다. 미술관에서 시작된 인연이 재단으로 이어지며, 각각의 작품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제자리를 찾게 된 셈이다.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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