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는 망했다. 통찰을 부리기도 전에 망했다. 공주 역에 라틴계를 캐스팅한 ‘정치적 올바름’ 집착이 관객을 피로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많다. 나로서는 그게 딱히 거슬리지는 않았다. 공주도 자외선 아래서 고생하면 피부가 어두워질 수 있다. 문제는 공주가 아니다. 여왕이다. 원작처럼 벼락 맞고 절벽 아래 떨어져 죽지 않는다. 너무 아름답게 시적으로 사라진다.
요즘 영화 속 악당은 시원하게 죽질 않는다. 내 유년기만 해도 악당은 악당이었다. 주인공에게 과격한 방법으로 죽을 운명이었다. 디즈니도 마찬가지였다. 악당은 죽었다. 떨어져 죽었다. 맞아 죽었다. 찔려 죽었다. 이제 디즈니 악당은 죽지도 않는다. ‘겨울왕국’ 악당은 감옥에 간다. ‘모아나’ 악당은 반전형 악당이다. ‘인사이드 아웃’이나 ‘엘리멘탈’ 같은 요즘 픽사 영화는 명확한 악당도 없다.
어른은 더 귀찮아진다. 디즈니 영화 보고도 아이와 교육적 대화를 나눠야 한다. “엄마, 여왕은 왜 원작처럼 안 죽어?” “그런 선악 이분법은 나쁜 거야. 여왕도 트라우마 있는 약자일 수 있잖아? 폭력적 응징이 해결법은 아니야. 현실에서는 항상 정의가 승리하지도 않는단다. 우리 공주 너도 영원히 공주일까?”
내가 권하는 현대 디즈니 영화의 대안은 1988년도 액션 영화 ‘다이하드’다. 15세 관람가 아니냐고? 여러분 중 그 영화를 15세 이후까지 참았다 본 사람은 거의 없다.
'5분 칼럼' 구독하기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