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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죽은 대통령의 죽은 아이디어[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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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의 시대였다.

관세가 잉태해 분열을 낳고 그 분열이 장성해 전쟁을 낳았다.

섬터 요새(Fort Sumter)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앞바다에 있는 인공섬에 지어진 군사 시설로, 남북전쟁이 발발한 곳으로 유명하다. 미국 남부의 관문이었던 찰스턴 항구를 방어하기 위해 지어졌지만 항구 출입을 통제하며 관세를 징수하는 지점으로서 역할이 컸다. 연방군이 점령하고 있던 이곳에 1861년4월12일 남부연합이 포격을 가한 것이 4년 내전의 시작이었다.

전쟁 직전, 양 측의 긴장이 높아지자 북부의 존 볼드윈 대령은 평화를 위해 섬터 요새에서 군대를 철수시킬 것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에게 간청했다. 링컨은 연간 최대 6000만달러의 관세를 포기하지 못해 전쟁을 택했다.

남북전쟁이 노예제도 때문에 발발했다고 한다면 3분의 1만 맞는 말이다. 더 큰 이유는 관세였다. 농기계를 유럽에서 수입하고 면화를 수출한 남부는 관세로 타격을 입었다. 반면 북부는 산업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산품이 경쟁력을 확보할 시간을 벌려면 관세가 필요했다. 남부는 높은 관세를 내고 수입품을 사든가, 북부의 질나쁜 제품을 가져다 써야 했다. 남부에서 세금을 거둬 북부에 보조금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링컨은 공화당 경선 때부터 보호주의 관세를 적극 지지했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남부의 불만이 극에 달했고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시작으로 연방 탈퇴선언이 이어졌다.

링컨은 남북전쟁 발발 한달 전 1차 대통령 취임때 연설문을 통해 "노예제도가 존재하는 주에 대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개입할 의도가 없다"고 했다. 연방을 지키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남부든 북부든, 노예제보다 중요한 것은 관세였다.

링컨이 죽고 160년이 흐른 2025년, 그만큼 장신(190cm 이상)에, 그만큼 관세를 사랑하는 이가 47대 미 대통령에 취임했다.

"강한 달러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

이 구호는 1990년대 후반 빌 클린턴 행정부의 로버트 루빈 재무부 장관 이래 미국 정책 담당자들의 일관된 정책 기조였다. 강달러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했으며 미국민과 기업의 구매력을 키웠다. 미국 정부가 달러를 강하게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미국이 발행하는 채권에 대한 신뢰가 컸다.

반면 무역적자와 제조업 쇠퇴를 감수해야 했다. 일자리를 잃은 러스트벨트 노동자의 지지를 업고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는 무역 적자와 재정 적자를 해소하고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시키겠다며 관세폭탄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링컨과 트럼프의 시대는 다르다. 과거 관세가 유치산업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됐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 미국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은 것은 인건비를 비롯한 생산비용 때문이지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관세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은 헨리 조지의 토지 단일세만큼 비현실적이다. 죽은 아이디어로 기업을 살릴 수는 없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관세로 남부가 피해를 봤듯, 결국 관세 부담은 자국민이 진다. 물가상승과 구매력 저하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극에 달했다. 뉴욕 거리를 뒤덮은 시위 인파에서 남북전쟁 당시의 분열된 미국이 보인다.

미국은 나아가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를 전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그 리스크에 1차로 맞서는 것이 우리 기업들이다. 가뜩이나 비우호적인 고용노동 환경에, 규제로 손발이 묶인 우리 기업들은 울고 싶은데 뺨을 맞은 격이다. 이미 몇몇은 미국으로 사업장을 옮기는 오프쇼어링 계획을 발표했듯이 기업들이 '탈한국'을 할 이유가 늘었다.

'재벌걱정 말라'는 식의 감정적 반응이 아닌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기업은 단순히 순망치한의 입술이 아니라 '경제전쟁' 최전선의 전투원들이다. 나는 이번 대선에서 기업경쟁력을 높이는 공약을 많이 내놓는 후보를 찍겠다.

머니투데이



양영권 증권부장 indep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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